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회변혁노동자당 (문단 편집) === 창당까지 === [[2000년대]] 이후 '노동자의 힘(노힘)', '노동자해방당 건설 투쟁단(당건투)', ‘사회주의노동자정당 준비모임’(사노준),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 '국제볼셰비키그룹(IBT)' 등의 이름으로 활동해 오던 이런저런 좌파 조직들은 [[2010년]]에 [[민주노총]] [[현장파]](좌파)를 주축으로 결집하여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를 결성했다. 이를 통해 '남한사회주의노동자당' 창당을 예비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사노위 내에서 이 남한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강령을 놓고 3인안, 5인안, 4인터안 이렇게 세 가지 강령안 사이에서 명확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4인터안을 제안한 IBT계가 이탈하여 '볼셰비키-레닌주의자'라는 별개의 단체로 분립해 나와서 볼셰비키그룹으로 개명한다. 해당 단체는 등재 기준 미달이나, 변혁당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간략하게 언급. 그렇게 사노위 자체도 표류하게 되는 와중에 사노련은 아예 자기네 조직을 해산하고 사노위 활동에 올인하기로 결정하였고, 이에 반발한 사노련 사수파는 '혁명적 노동자당 건설 현장투쟁위원회'(노건투)라는 이름의 단체로 분립해 나온다. 이후 [[2018년]]까지 노건투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둘로 쪼개졌다. 둘 가운데 다수파는 '노동해방투쟁연대'(노해투)란 이름으로 조직을 재정비했고, 소수파는 아직 소식이 없다. 역시 이 단체도 등재 기준 미달이나, 변혁당의 역사와 관련하여 간략하게 서술. 이렇게 표류하던 사노위는 [[2012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노동자 정치세력화 복원을 목표로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 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전국 활동가 모임(약칭 변혁모임)'으로 개편된다. 12월에 벌어진 [[2012년 대선|대통령 선거]]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이끌어온 [[김소연(1970)|김소연]] 전 기륭전자 분회장을 무소속 노동자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여 [[진보신당연대회의]]등과 공동 선거운동을 벌여 16,687표로 0.05%의 득표를 얻어 5위로 낙선한다. 이후 몇 번의 명칭변경 및 약칭논란이 생긴 후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라는 길고 긴 약칭으로 정착하였다. 이마저도 길다고 느껴서인지 외부에서는 변혁모임, 변혁, 노계추, 추진위 등으로 또다시 줄여부른다. 조직이 하나로 모인지 만 3년이 지나고 [[2016년]] [[1월 31일]]에 서울 흑석동 원불교회관에서 '''사회변혁노동자당''' 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창당하였다. 이 자리에서 당명과 강령, 당헌 채택을 비롯해 대표 선출, 사업방향 채택 등의 안건을 심의, 확정하였으며, 당명으로는 ‘평등사회당’, ‘노동계급당’ ‘사회변혁노동자당’ 등의 후보 중, ‘사회변혁노동자당’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또한, 약칭은 변혁당 으로 결정되었다. 또한, 당 대표로는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당시의 대표였던 이종회 대표를 선출했다. 이들은 "분리된 자, 차별받는 자, 배제된 자, 그들이 우리이고 노동자 계급 정치의 주체”라며 “더 나은 세계, 자유로운 개인의 연대사회로 나아가는 투쟁과 변혁의 정치를 실현할 것" 이라고 밝혔다.[[http://m.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048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