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회주의/역사 (문단 편집) === 초기 [[기독교]] 공동체 ===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한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갔다. >---- >[[사도행전]] 2장 44~47절, [[공동번역성서]] 그 많은 신도들이 다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사도들은 놀라운 기적을 나타내며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신도들은 모두 하느님의 크신 축복을 받았다.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서 그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다 놓고 저마다 쓸 만큼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다.(사도행전 4장 32절~35절, 공동번역) 기독교의 경우, 사도행전에 묘사된 서기 1세기경의 공동체 모습은 사회주의적인 면이 많다. 특히 기독교가 서양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면서, 사유재산이 없는 이러한 초기 공동체의 모습은 이후 유럽인들에게 "와.. 겁나 훈훈하게 살았네"라는 식의 이상향적인 이미지를 주었다. 현재도 많은 수의 [[그리스도교]] [[수도회]]가 재산의 공동 소유 또는 제한적 소유만을 인정하고 있다. 사실 마냥 훈훈한 것만은 아니었다. 횡령하다가 [[베드로]]에게 딱 걸려서 신벌을 받아 죽는 사람의 이야기도 나온다. 아울러 공동체 내에 거듭된 분열과 반목은 신약성서 내내 나온다.[* 우파 기독교에서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강제성으로 이러한 공동소유가 유지되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신벌(천벌)을 받았다는 서술은 역사적으로 기독교 초기 공동체에서 강제적인 소유권 포기와 재물 공유가 이루어졌음을 나타낸다. 복음보다는 보수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그들의 주장은, (i) 그러나 1세기 초대교회에서 보여지는 서로 물건을 통용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제도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었다. (ii) 사도행전 초기 사회주의 공동체가 매우 독특했고 역사 보편적일 수 없다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신승리'는 초기기독교에 대한 무지일 뿐 아니라, 가진것을 모두 팔라,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 등 예수의 본 가르침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기독교 발전의 역사를 보면 초기 사도행전 공동체에 대한 기독교사회주의적 이해는 서방교회에서 흔히 통용되었던 이해방식이었다. 종교개혁 과정에서 개신교는 가톨릭으로부터의 탄압을 피해 자본주의 국가주의 세력의 보호를 추구하였다. 사도행전 공동체에 대한 개신교의 왜곡은 이러한 역사적 발전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역사적 상처)와 같은 궤에서 이해해야 한다. 개신교가 초기에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절대왕권에 대한 옹호와 민족국가로의 충성 ('하늘의시민권'을 골자로 하는 [[바울로]] 신학의 축소), 그리고 신흥 자본가로의 경제적 예속 (사회주의적 성경이해의 약화) 등은 어쩔 수 없는 수정적 과정이었을 것이다.] 현대에는 '[[기독교 사회주의]]'가 이런 정신을 계승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