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살라르족 (문단 편집) == 종교 ==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는다. [[하나피파]]에 속한다. 같은 이슬람교를 믿는 [[후이족]]과 풍속이 유사하다. 살라르족에게 영향을 준 낙슈반디야 수피 교단은 [[티베트 불교]]의 겔룩파의 영향을 받은 종파로, 한편으로는 티베트 불교와의 유사점으로 티베트 불교를 믿는 살라르족의 이웃 티베트계 주민들을 이슬람교로 빠른 속도로 개종시킬 수 있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수피 성직자들이 지나치게 재산을 탐해도 평신도들이 견제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명나라 치세 당시 둔전병이던 살라르족들은 청나라 치세 영토가 확장되면서 그냥 평범한 소수민족 집단으로 전락하였고 상당수가 후이족 지주들의 땅을 부쳐먹고 사는 소작농들이 되었는데, 후이족 지주들은 대개 율법학자들을 겸했다. 1761년 회족 마명심은 기존 낙슈반디야 교단과 다르게 율법학자들에게 청빈한 생활을 강조하면서 회족 사회 내에서 여러 논란을 일으켰는데, 살라르족 소작농들 눈에서 성직자들에게 청빈한 생활을 강조하는 자흐리야 교단이야말로 진정한 이슬람 교단으로 비춰져보이기 시작했다. 간쑤성의 후이족 상당수가 마명심이 새로 도입한 자흐리야 수피 교단을 따르자, 기존 낙슈반디야 교단(쿠피야 교단)[* 조용히 지크르를 암송하는 교단이라는 뜻이다. 크게 소리내어 지크르를 하는 교단이라는 뜻의 자흐리야 교단과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름이다.]에서는 자흐리야 수피 교단의 예배법이 이단이라고 공격하며 잦은 패싸움이 벌어졌다. 살라르족들은 마명심의 자흐리야 교단 편에 서서 쿠피야 교단과 대치하였다. 1781년 마명심이 투옥당하자 살라르족들이 마명심의 석방을 요청하며 폭동을 일으켰는데, 이를 보고 당황한 청나라 관리들이 마명심을 성벽에서 밀어떨어트려 죽이는 일이 발생한다. 교단주가 죽자 충격을 받은 살라르족들은 대놓고 청나라 조정에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을 진압한 청나라 조정은 3년 후에 살라르족들이 또 한 번 반란을 일으키자 살라르족 상당수를 천산북로로 귀양보낸다. 이렇게 귀양을 간 살라르족들은 대개 후이족과 동화되었지만 일부는 아직도 살라르족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오늘날 [[일리 카자흐 자치주]]에 거주하는 살라르족 인구 4천여 명이 여기에 해당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