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살수대첩 (문단 편집) == 북한의 관점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북한 살수대첩.jpg|width=100%]] }}} || [[북한]]의 관점도 남한과 대체로 일치하지만[* 그냥 을지문덕이 일방적으로 털어먹었다고 몇 줄 쓰며 끝나는 한국 교과서와 달리 고구려의 비중이 많은 북한에서는 교과서에서 살수 대첩에 관해 소단원까지 할애해가며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살수대첩이 '''[[요동]] 일대'''에서 일어났다고 본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이는 북한판 국사 교과서인 《[[조선력사]]》의 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적들은 겨우 대오를 수습해가지고 '''살수(소자하)를 건너''' 봉황성 30리 지점까지 다다랐다…수나라 침략군이 살수를 건느기 시작하자 매복하고 있던 고구려군은 일제히 떨쳐나서 전후좌우에서 적들을 무리로 족치는 통쾌한 섬멸전을 벌리였다. 그리하여 이 전투에서 고구려 군대는 침략군을 거의다 섬멸해버렸다. 살수 전투에서 살아돌아간 적들은 겨우 2,700명뿐이었다. 이것을 우리 나라 력사에서는 살수대첩(薩水大捷)이라고 자자손손 긍지 높이 불렀으며 그것을 고구려의 강대성과 민족적 기개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 > 《[[조선력사]]》 때문에 이와 관련해서 조선시대 이래의 칠불사 역시 >"봉건사가들이 청천강에 날조된 역사 이야기를 갖다 붙이면서 칠불사 전설도 꾸며 놓은 것" 이라고 격하했고, 이름도 김일성이 '칠렬사'(七烈士)로 고치게 했다고 한다. [[http://www.cybernk.net/infoText/InfoRelicDetail.aspx?mc=DR0104&sc=A405200&tid=DR010400010146|#]]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