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지연의 (문단 편집) == 줄거리 == [include(틀:스포일러)] * '''황건적의 난, 도원결의'''(1회~2회) [[후한]] 말, [[십상시]]의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며 기강이 문란해지자, 백성들은 점점 불만을 품기 시작하며 전국은 극도로 혼란해졌다. 이런 가운데 [[태평도]]의 교주 [[장각]]이 이끄는 [[황건적의 난]]이라는 대규모 농민 반란이 발생한다. 황실의 먼 후손인 [[유비]]는 [[관우]], [[장비]]와 [[도원결의|복숭아 나무 아래에서 형제가 되기로 맹세하고]] 황건적 토벌을 돕기로 한다. 유비, 관우, 장비 3형제를 비롯한 영웅 호걸들의 활약 덕분에 황건적의 난은 진압되었지만, 이미 조정의 지방 통제력은 붕괴 직전에 도달했다. * '''십상시의 난'''(3회) 서기 189년, 수도 [[낙양]]에서는 [[영제]]가 죽고 외척과 환관 사이의 정권 다툼 끝에 [[십상시의 난]]이 발생하였다. 군벌 [[동탁]]은 외척과 환관이라는 양대 세력이 없어지는 바람에 공백이 생긴 권력을 장악한 후, 스스로를 상국이라고 칭하며 극악무도한 악행을 저지르니 황실의 정통성과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동탁은 [[후소제(후한)|소제]]를 폐하고 [[헌제]]를 꼭두각시 황제로 세웠다. * '''반동탁 연합과 군웅할거'''(4회~19회) 이런 동탁의 행위에 각지의 제후들이 원소를 중심으로 서로 연합하니 이를 [[18로 제후|반동탁연합]]이라 한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제후들은 서로의 이권 문제 때문에 대립하기 시작하여 결국 [[동탁]]과 싸우기는커녕 자신들끼리 서로 싸우게 되어 연합은 해산된다. 동탁은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하며 폭정을 계속하다가 [[초선]]을 이용한 [[왕윤]]의 이간계에 당해 여포에게 처단된다. 그 후 여포는 [[이각]]·[[곽사]]에게 밀려 장안에서 쫓겨나며 왕윤은 이각·곽사에게 살해당했다. 연합에 참여했던 제후 중 한 명인 [[손견]]의 아들인 [[손책]]은 양주(강동)[* 강소성+절강성 쪽이다.]에서 독립하며 원술은 황제를 칭했다가 몰락했다. * '''동승의 조조 암살 미수사건, 관우의 천리행, 관도대전과 조조의 하북 장악'''(20회~24회, 25회~29회, 30회~33회) 그러던 중에 반동탁 연합에 참여했던 제후 중 하나인 [[조조]]가 [[헌제]]를 옹립하며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게 되고, 그 힘을 이용해서 [[여포]], [[원술]], [[도겸(삼국지)|도겸]] 등 여러 군벌을 정벌해나가며 권력의 입지를 다진다. [[동승]]은 헌제의 밀명을 받들어 유비를 끌어들여 조조를 암살하려 했으나 들켜 일족이 모두 처형당하며, 유비도 조조에게 패하며 원소에게 의탁했다. 관우는 유비 가족의 안위를 보장받는 조건으로 [[장료]]의 설득을 받아들여 조조에게 항복했지만, 원소의 장수 [[안량]]과 [[문추]]의 목을 벤 뒤 다시 유비에게 돌아간다. 장비는 여남에서 머물다가 유비·관우와 합류하며 [[공손찬]]이 멸망한 뒤 떠돌던 조운도 유비의 부하가 된다.[* [[유벽]], [[공도]]도 연의에선 유비의 부하로 들어왔으나 얼마 후 조조와 싸우다가 전사했다.] 조조가 [[관도대전]]에서 [[원소(삼국지)|원소]]와의 일전일퇴의 사투 끝에 승리를 거둔다. 얼마 후 원소가 죽고 [[원담]], [[원희]], [[원상]]이 내분을 벌이자 조조는 원씨 형제를 모두 멸망시키고 하북을 제패하면서 최강 세력으로 자리잡는다. * '''삼고초려, 적벽대전'''(34회~40회, 41회~42회[* 41회와 42회는 [[장판파]] 에피소드다.] 43회~50회, 51회~57회[* 51회~57회는 제갈량과 주유가 형주를 놓고 지략 싸움을 벌이는 에피소드다.]) 그 동안 유비는 새 근거지였던 여남이 조조에게 함락되자 [[유표]]의 객장이 되었으며, 그 와중에 [[사마휘]]와 [[서서]]의 추천으로 재야에 숨은 인재 [[제갈량]]에 대해 알게 된 유비는 [[삼고초려|세 번이나 제갈량의 거처를 찾아가는 수고를 들여]] 제갈량을 영입한다.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를 받아들인 유비는 유표 사후에 손책의 동생 [[손권]][* 손책은 29회에서 죽었다.]과 연합하여 남하하는 조조군과 싸워 [[적벽대전]]의 승자가 되어 형주 남부의 4개 군을 차지한다. 유비는 [[손부인|손권의 여동생]]을 새 아내로 맞으나 유비와 제갈량의 야심을 경계한 [[주유]]는 제갈량과 지략 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밀리던 중에 조조가 차지했던 남군을 공략하다가 입은 부상+제갈량과의 지략 싸움에서 밀린 화병이 도져 요절한다. 주유 사후에 [[노숙]]은 유비와의 동맹을 계속 유지했다. * '''마초와 조조의 싸움'''(55회~56회) 조조는 허도에 있던 [[마등]]과 그 아들들인 [[마휴]], [[마철]]을 주살하지만 량주에 있던 [[마초]]는 복수전을 시도한다. 하지만 [[가후]]의 반간계에 밀려 패하고 권토중래를 노리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한중의 [[장로(삼국지)|장로]]에게 의탁한다.[* 64회에서 마초는 유비의 수하가 되며, 한중에 남았던 방덕은 67회에서 조조의 수하가 된 뒤 74회에서 관우와의 싸움에서 패사한다.] * '''유비 입촉, 합비 공방전, 한중 공방전'''(60회~65회, 66회~69회, 70회~73회) 유비는 익주로 들어가 [[유장(삼국지)|유장]]을 몰아내고 익주를 새 근거지로 삼았다. 입촉 때 종군한 참모 [[방통]]이 전사하는 불운을 겪었지만, 장로를 몰아내고 한중을 차지한 조조와 [[한중 공방전]]에서 승리하며 한중왕으로 즉위한다. 한편 손권은 [[합비 공방전|합비를 공략]]하지만 장료가 이끈 위군에게 패한다. * '''형주 공방전, 조조의 죽음, 후한 멸망'''(74회~77회, 78회~80회) 그러나 유비는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형주 문제로 손권과 크게 대립하게 되고, [[형주 공방전]]에서 관우는 위와 오의 협공을 받으며 [[여몽]]과 [[육손]]의 계략에 당해 전사한다. 얼마 후 여몽과 [[조조]]는 차례로 세상을 뜨고, [[조비]]는 헌제에게 선양받아 [[위(삼국시대)|위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된다. 이를 찬탈로 여긴 유비는 익주에서 한나라의 부활을 선포하며 [[촉한]]을 세운다. * '''이릉대전, 도원종언'''(81회~86회) 유비는 복수전을 준비하지만 장비가 부하의 배신으로 암살당하는 불상사를 겪고, 결국 [[이릉대전]]에서 육손이 지휘하는 오나라 군대에게 대패하면서 막대한 전력 손실을 입는다. 이로 인해 제갈량이 세운 천하삼분지계는 완전히 틀어지게 된다. [[도원종언|유비는 성도로 돌아오지 않고 백제성에서 머물다가 병사하고]], 제갈량과 조운에게 태자 [[유선]]을 보필해 줄 것과 한을 부흥시켜 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 '''오로침공, 칠종칠금'''(86회~90회) 유비가 죽자 조비는 이릉대전 때 칭신한 손권을 끌어들인 뒤 [[맹획]], [[가비능]]과 연계하여 촉을 공격하지만 제갈량은 [[등지]]를 보내어 오와 화친하고 가비능은 마초[* 오로 침공은 시기상으로 유비 사후인 223년 4월 이후~옹개 토벌전인 225년 이전이 되어야 하는데, 마초는 실제로는 이미 유비가 죽기도 전인 222년에 병사하였다.연의에서는 마초의 사망 시기를 남만 정벌이 끝난 225년 이후로 늦췄다.]를 보내서 막았다. 조비는 오나라를 공격하지만 [[정봉]], [[서성]]에게 패하며, 제갈량은 [[칠종칠금]]으로 맹획의 항복을 받아 배후 위협을 없앴다. * '''제갈량의 북벌'''(91회~104회) 제갈량은 여러 차례 북벌을 시도하지만, 번번히 군사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추풍오장원|결국 전쟁 수행 도중에 병사하고 만다.]] 위에서는 사마의가 제갈량의 맞수로 떠오르며 명성을 쌓고 오의 손권은 스스로 황제가 되며 삼국 정립 구도가 자리잡는다. 북벌 때 제갈량은 위나라 장수 출신인 [[강유]]를 등용하며 병법이십사편을 전수했다. * '''사마씨의 위나라 장악, 강유의 북벌'''(105회~115회) 제갈량 사후, [[제갈량의 북벌]]을 방어해냄으로써 입지가 강력해진 [[사마의]]가 [[고평릉 사변]]을 통해 위의 권력을 장악한다. 강유는 제갈량의 유지를 받들어 북벌을 다시 시작하지만 [[등애]]와 같은 위나라 장수들이 분전한 탓에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에서는 손권이 세상을 뜬 뒤 [[손량]]과 [[손휴]]로 황제가 바뀌며 [[손준]]과 [[손침]] 등이 전횡을 펼치다가 손휴에게 처단된다.[* 손준은 손침보다 먼저 죽었다.] 위에서는 [[관구검]], [[문흠]], [[제갈탄]] 등이 사마씨 일족들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나 실패하며, 황제 [[조방]]과 [[조모(삼국지)|조모]]도 사마씨의 간섭에서 벗어나려다가 각각 폐위당하고 살해당한다. * '''촉한 멸망'''(116회~118회) 사마씨 일족은 263년에 촉한을 침공하고, 강유는 검각에서 [[종회]]의 병력을 막지만 등애가 음평을 통해 기습하는 도박을 벌여 성공한다. [[마막]]이 항복하여 길잡이를 맡는 가운데 제갈량의 늦둥이 아들 [[제갈첨]]은 등애를 막다가 전사하며, 황제 [[유선(삼국지)|유선]]은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아들 [[유심]]의 간언을 듣지 않고 [[초주]]의 말에 따라 등애의 위군에게 항복한다. 유심은 부황의 항복이 확정되자 처자식을 죽이고 자살하며, 강유는 야심을 품은 종회를 이용해 촉한 부흥을 노리지만 종회를 따르지 않은 [[호열]]과 [[위관]] 등의 선제공격을 받고 종회와 함께 살해당하면서 촉한은 무너진다. 등애도 종회의 모함을 받고 낙양으로 끌려다가가 그에게 불만이 있던 부관 [[전속]]에게 살해당한다. * '''진나라의 삼국 통일'''(119회~120회) 사마소의 아들 [[사마염]]은 265년 위나라 황제 [[조환]]을 압박해 선양받고 [[서진|진나라]]를 건국한다. 오나라는 손휴가 죽고 즉위한 황제 [[손호]]의 폭정으로 약해졌고, [[육항]]이 [[양호]]를 상대로 분전하지만 육항은 진나라의 반간계에 넘어간 황제에게 면직된다. 몇 년 후 육항이 죽고 진나라가 280년 오나라를 멸망시킴으로써 삼국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이 진나라조차 내부 부패로 멸망하고 뒷사람들이 그때를 그리며 시를 짓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삼국지, version=563)]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