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지연의 (문단 편집) == 여담 == * 원말명초에 [[나관중]]이 집필한 원본은 현재 소실되었다. * 워낙 대작인 터라 이에 얽힌 야사도 많은데, 나관중이 이걸 쓰는 동안 반쯤 미쳐서 돌아다녔다든가(뭘 묻기만 하면 소설 내용을, 그것도 앞뒤가 안 맞게 이야기했다는 정도로), 처음에는 관우를 신나게 비판하다가 진짜 관우의 혼령이 내려와 버려서 크게 놀라 다시 썼다든가 하는 이야기 등이 전해 내려온다. 물론 이는 그만큼 나관중이 이 작품을 잘 썼다는 이야기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 [[http://www.pgr21.com/pb/pb.php?id=freedom&no=70949|서양에는 19세기에 처음 소개되었는데]] 당시에 가장 인상깊게 소개된 인물은 [[제갈량]]이었으며, 이후에 나관중은 동양의 [[호메로스]], [[타키투스]]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서양에서 흔히 삼국지연의를 소개할 때 동아시아권에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같은 수준의 영향력을 끼친 소설이라고 소개한다.[* 출처: [[https://www.thebubble.org.uk/culture/literature/non-western-literature-series-romance-of-the-three-kingdoms/|1]], [[https://randallwriting.com/three-kingdoms-chapter-summary-1/|2]], [[https://kotaku.com/romance-of-the-three-kingdoms-is-a-perfect-blend-of-str-1785834525|3]]] * 삼국지연의가 하도 유명하다 보니 [[중국]]의 모든 역사적 시기를 통틀어 정사와 소설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단연코 독보적으로 많다. 사실 삼국시대가 역사적으로는 시기가 짧고 비중도 적은 시대인데[* 우리로 치면 동예/옥저 정도?] 소설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더 커지는 것이다. 웬만큼 배웠다는 사람도 자주 혼란을 일으키며, [[정사 삼국지]]를 조금 읽은 사람은 무슨 [[마공]]인지 [[주화입마]]에 빠져서 연의와 정사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 돼버리는 건 예사다. 예를 들면 낙봉파[* 낙봉파라는 지명 자체가 허구다. 그런데 지금 [[중국]]에는 삼국지의 허구 지명들이 속속 다 생겨있다. [[제갈량]]의 거처인 융중을 자처하는 곳도 여럿이고(이쪽은 실존했던 지명이지만). 이게 다 관광객들 대상으로 하는 돈벌이용.]에서 방사원을 어쩌고하는 시를 지었다가 소설가지고 시짓는다는 소리를 듣는 일 등이 생각보다 자주 벌어졌다. 이걸 엄격히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은 전문 연구가나 골수 [[삼국지덕후]]들밖에 없는데 이런 사람들도 가끔 혼란을 일으킨다. *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삼국지연의 관련 작품은 [[이문열 평역 삼국지]]이며 1,800만 부 이상 팔리며 한국 소설 판매량 역대 1위다. 원작자가 아님에도, 온전히 그의 것인 명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함께 이문열이 가진 명성의 한 축을 차지하는 작품.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삼국지연의 관련 작품은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이며 약 7,000만부~8,000만부 이상 팔렸다. 역사 만화 판매량 1위이기도 하다.[[https://www.mangazenkan.com/ranking/books-circulation.html|#]] * [[마오쩌둥]]이 가장 좋아한 소설이다.[* [[수호전]]이라는 말도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읽었다고 한다. 또 이 소설의 수록된 정치 · 군사적 이야기를 읽고 이를 실제 작전에 활용했다. 또한, 마오쩌둥은 인물 중 조조를 좋아했기에 조조에 대한 재평가에 영향을 끼쳤다. * 같은 [[중국사대기서]]로 묶인 수호전에서는 나관중의 영향인지 몇몇 인물들의 특징을 삼국지연의에서 가져왔다. 수호전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임충]]은 '소[[장비]]'라고 불리며 [[장팔사모]]를 사용한다. 또 [[여방]]은 [[여포]]를 동경하는 인물로 [[방천화극]]을 사용하고, [[관승]]은 [[관우]]의 후손으로 [[청룡언월도]]를 사용한다. * 한국의 사극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2000년대 대작 사극에서 등장하는 의형제 3인방 포지션의 인물들은 십중팔구가 유관장 삼형제의 영향을 받았다.[* [[태조왕건]]에서 왕건, 신숭겸, 박술희가 대표적이며 각각 유비, 관우, 장비의 캐릭터가 입혀졌다. [[대조영(드라마)|대조영]]의 대조영, 걸사비우, 흑수돌도 마찬가지다.] * 삼국지연의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등등에서도 많이 차용되는 소설 중에 하나다. 사극 또한 그러하다. 대게 동양 문학 입문 과정에서 삼국지연의는 항상 나온다. 특히 게임의 경우 노부나가의 야망도 삼국지연의를 차용하는 흔적이 자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코에이 대표 게임 중 하나가 삼국지다. * 삼국지연의는 2018년 한국 [[교수]] 405명이 뽑은 추천하는 책 6위, 다시 읽고 싶은 책 2위에 선정되기도 했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3065|출처]] * 작품 내에서 상대보다 압도적인 전력을 이끌고 온 군주가 오히려 적은 수의 적군에게 지는 경우가 많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관도대전의 원소, 적벽대전의 조조, 이릉대전의 유비 등), 사실 대군이 패배한 경우가 묘사가 많고 임팩트가 크게 남아서 그렇지 실제 연의에서는 대병력에 밀리거나 항복하는 약소군주가 훨씬 많다. [[유대(삼국지)|유대]], [[교모]], [[한복]], [[여포]], [[원술]], [[유표]], [[마초]], [[장로]], [[맹획]], [[공손연]] 등 이외에도 대군에게 발린 경우가 수도 없이 많고 [[유비]]조차 조조의 대병력에 숱하게 박살나며 초창기의 조조 역시 [[서영(삼국지)|서영]]의 대병력에게 박살난다. 선택적 기억의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 기본적으로 군담 소설이기 때문에 문신들은 비중이 거의 없다. 제갈량이 군략가의 포지션이 된 것은 그가 역사대로 문관이 되면 후반부에는 혼자 비중이 적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그나마 문신들이 비중이 높은 편에 속한다"는 말이 있다. 당연한 것이 이것은 역사서가 아니라 소설이고, 더 넓게는 대중문학이다. 이전에는 판소리처럼 이야기꾼이 이야기하는 형식이었고, 원대에는 잡극이라고 해서 연극으로 다루는 내용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돈 받고 하면서, 읽는 사람, 듣는 사람, 보는 사람에게 임팩트와 재미를 주려면 내정보다는 전쟁, 전쟁보다는 [[일기토]]라고 불리는 일대일 결투를 벌여야 한다. 특히 원나라 시대를 주름잡았던 원대 잡극의 경우는 어지간한 것은 다 일기토로 때워버리는데, 연극하면서 관객들 하품할 내정 장면을 넣거나, 돈 많이 주고 엑스트라 동원해 봐야 규모가 얼마 될 수 없는 전투 장면 넣느니 차라리 장군 둘이 맞싸움 벌이는 것이 보는 사람 이해하기 편한 것이다. 제갈량이 대놓고 칼싸움 안 하고 도술 안 부린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단적으로 삼국지평화의 제갈량과 방통은 완전한 신선처럼 묘사되니 말이다. 삼국지의 제갈량은 수호전의 오용과 공손승을 8대 2 내지 9대 1정도 비율로 섞어놓은 듯한 이미지인데, 여기서 비율을 1대1로만 조절해도 [[봉신연의]]를 향해 달려가게 된다. * 이 소설과 수호전을 동시에 비판한 '쌍전(원제 쌍전비판)'이라는 책도 있다. 책사들인 제갈량과 사마의의 잔혹한 책략들, 자기 군주나 부하를 위해 다른 목숨을 함부로 버리는 행동(예를 들어 조운이 아두를 구출해 오자 훌륭한 장수를 잃을 뻔했다며 자기 아들인 아두를 버리려고 한 유비 등. 그러면서 백성은 또 아끼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유비가 [[이중잣대]]를 들이댄다고 비판했다.)[* 사실 이중잣대니 뭐니 해도, 당시에는 혈육(단 일반적으로 부모는 제외. 불효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에 얽매이지 않는 걸 좋게 보는 풍조가 있었다. 전국시대에는 연소왕이 악의를 참소한 태자를 두들겨 팼던 이야기가 있고, 같은 삼국시대에 조조는 전위의 죽음을 조앙의 죽음보다 더 애통하게 여겼다. 더 넓게 보면 대의를 위해 혈육들을 희생시키는 행위가 장려받던 게 전근대의 시대상이었다. 위나라를 위해 아들을 사지로 내몬 왕이가 여장부로 칭송받고, 민담에서 아들을 호랑이에게 던져주는 효부의 이야기도 있을 정도. 현대에도 가진 게 많은 사람이 혈육보다 타인을 챙기는 것을 좋게 보는 건 변하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을 비판 소재로 삼았다.[* 사실 약간 억지인 부분도 있다. 권모술수라는 말은 오히려 병법의 기본이고, 당시 시대상으로는 오히려 자신과 부하를 위하는 것이 중요했다. [[고제(전한)|한고제]]가 자기가 자식들을 버린 것은 유명한 일화. 심지어 유선을 구해온 조운은 유비와 가족 같은 관계였고 유비가 가장 신임하는 자였다. 오히려 대표적으로 [[서서]]같은 인물은 자신의 모친을 생각해서 유비의 신임을 얻고서도 유비에서 조조로 간 자도 있다. 이중잣대라 하면 오히려 이 책을 쓴 류짜이푸가 유비에게 대는 것이 아닐까? 제갈량과 사마의에 관해서는 제갈량은 남만을 해결하기 위해 제압 도중 '''저항하다''' 죽는 남만인들을 보고 언제까지 저들을 죽어야 하나라고 탄식 한다. 그러나 제갈량은 가혹한 계책은 오히려 적에게 하고 백성들을 보살폈다. 한편 사마의는 자신의 입지가 부족해지는 상황이였다. 오히려 가혹한 계책을 내서 확실하게 입지를 다져야 했다. * 배경이 중국이라 그런지 스케일이 엄청나게 큰 것이 특징인데, 기본적으로 군사를 일으켰다 하면 천 단위가 기본이요 적군과 제대로 맞붙으면 만 단위, 십만 대군도 심심찮게 나오는 수준이다. 단연 압권은 적벽에서 등장한 조조의 백만 대군.[* 당시 위촉오의 병력으로 백만대군은 물론 수십만 규모의 군대를 동원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다. 적벽대전에 위가 동원한 것으로 추정되는 십수만이 한계였을 것이다. 이 당시 중국의 인구가 수천만 정도였기는했으나 전쟁과 전염병으로 인해 인구가 많이 줄어들었고 유량민도 발생했기때문에 실제 인구와 명부상 인구의 차이가 컸다. 그래서 실제 동원할 수 있던 인구수가 적을 수 밖에 없던 것.] 실제 역사보다도 규모가 큰 이유는 나관중의 시대였던 원말명초에는 정말로 이런 대군을 보는 게 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국지는 현재도 동아시아 전역에서 읽히는 스테디셀러이기 때문에 현대의 작가들도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데, 이 때문에 배경이 중국이 아니라 중세 유럽 혹은 중세 유럽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 세계같은 경우에도 군사 스케일을 삼국지 수준으로 키워놓는 오류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유럽 고전 서사시나 역사를 배우며 자란 서양인들은 이런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다. 판타지의 고전 [[반지의 제왕]]에서도 세계의 운명이 갈리는 최종결전에 겨우 몇 만 단위 병력이 나오는 수준이고 [[라스트 킹덤]]의 원작소설처럼 중세 초기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 유능한 기사가 이끄는 50여 명이면 국경을 안정적으로 방어할 수 있고 잘 훈련된 창병 100명이면 전황을 뒤집을 대군이며 바이킹 천 명이면 왕국의 멸망을 부를 대군세다. 당장에 [[이교도 대군세]]라고 이름붙여진 바이킹의 대침공은 겨우 수천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나 당시 잉글랜드의 7왕국 중 머시아, 노섬브리아, 동앵글리아를 무너뜨린 강대한 침공이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이보다 300여 년 전 벌어진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군측 전사자만 3만 명 가까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