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지연의 (문단 편집) === 형성에 관하여 === 연의가 "[[민담]]"을 많이 인용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삼국지연의를 그 이전 시대의 삼국지 관련 작품들과 비교해 보면 의외로 민담의 비중은 적고, 많은 부분이 역사적 기록에 근거한 창작 과정을 거쳐서 구성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저본이 되는 [[삼국지평화]]의 내용 자체가 삼국지 연의의 총량 중 10% 수준이다. [[마개조]]라는 말로도 부족하고 사실상 재창작이다. 실제로 [[가정제|가정]]본(1522년의 판본) 삼국지통속연의의 서문을 써준 장대기는 나관중이 [[정사 삼국지]]를 바탕으로 연의를 편차하였다고 적었다. 다만 현대의 연구에서는 정사 삼국지를 직접 참조하였다기보다는 [[자치통감]]의 축약본을 직접적인 자료로 썼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사 삼국지는 [[기전체]]라서 구조가 복잡하여 자료로 쓰기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에, [[편년체]] 형식인 자치통감이 이야기를 만드는 자료로서는 더 나았을 것이다. 물론 정사 자료를 참고를 안 했다는 것은 아니다. 정사 혹은 정사에서 인용된 사서에만 나오고, 자치통감에는 언급이 없는 일화들도 많을 뿐 아니라, 정사의 본문을 잘못 읽거나 혹은 필사본의 제작이 잘못되었을 때만 있을 수 있는 오류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양대장]]이다.] >지난 [[원나라]] 시대에는 민간에 전해지는 역사를 바탕으로 평화를 만들어 이야기꾼에게 구연하게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오류가 많고 너무나 저속하여 교양있는 [[사군자]]들이 대부분 싫어했다. 그래서 동원 땅 출신의 나관중이 진수의 삼국지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을 신중하게 취사선택하여 편찬하고 삼국지통속연의라 이름했다. 그 문장은 심오하지 않고, 말투는 그다지 속되지 않으며, 사실을 기록하여 역사 본연의 모습에 접근했다. 독자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 >― 가정본 《삼국지통속연의》 서문 / [[부산대]] 삼국지문화기행 교재에서 인용. 오히려 삼국지연의 이후 시대에 발생하는 민담이나 파생 작품들은 대부분 삼국지연의에 기초하여 연의를 일부 변형하는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