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지연의/피해자 (문단 편집) === '''[[여몽]]''' === [[삼국지연의|연의]]에서는 [[관우]]의 귀신에게 빙의당하고 온몸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다고 한다. 게다가 죽을 때에도 '''나는 관우다!'''라고 했다니 이건 뭐(…). [[나관중]] 등 관우 신봉자들의 미움을 많이 받았는지 연의에서는 [[괄목상대]]의 일화도 없고[* 김홍신 평역판의 경우 안쓰러웠는지 괄목상대의 일화를 추가했다. 단, 본인 입으로 얘기하진 못했고 남의 입을 통해 "그랬다더라"는 식으로만 언급된다.], 형주 공략 때 세운 계략이 연의에서는 [[육손]]의 계략으로 나오는 등 전공이 축소되었으며, [[정사 삼국지|정사]]에서 보이는 좋은 일화들이 연의에서는 많이 삭제되어 있다.[* 그러나 여몽은 형주 공략 당시 투병 중이었다. 병상에서 육손에게 조언했을진 몰라도 형주 공략의 아이디어를 육손에게 돌리는 건 무리가 아니라는 시각도 엄연히 있다.] 게다가 [[관우]] 사후의 에피소드는 조조의 죽음에서부터 뭔가 쑥덕거릴 여지가 많았기 때문에 당대의 민간설화도 엄청나게 많다. 지병이 도져 급사한 것을 극적인 요소를 집어넣어 화려하게(?) 연출한 것. 물론 지병을 앓고 있었어도 형주를 공략할 당시까지만 해도 업무수행은 가능할 정도였는데 관우를 죽이자마자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었던 만큼 정말 저주를 받은 걸로 비칠수 있긴 했다. 이러한 서술 때문에 [[여몽]]의 후예인 여씨 집안 사람이 관우사당에 들어가면 [[관우]]의 원혼에 의해 즉사한다는 미신이 생겨났으며, [[임진왜란]] 이후로 [[명나라]]에 의해 [[조선]]에 관우신앙이 퍼져 관우사당이 곳곳에서 생겨난 이후로 조선에서도 이런 미신이 성하였다고 한다.[* [[임진록#s-1|임진록]]에서는 [[만력제]]가 [[조선]]에서 원군을 청하러 온 사신을 내쫓고 잠을 자다 보니, 꿈에 [[관우]]가 나타나서 만력제에게 말하길 "황제 폐하께서는 저의 형님이신 유비가 환생한 것이며, 조선의 임금 [[선조(조선)|선조]]는 '''[[장비]]'''가 환생한 것이옵니다. 그러니 형제의 의로써 도와주십시오"하고 사라졌다는 서술이 나온다.] --장비가 선조로 환생한 거면 그렇게 겁쟁이처럼 도망가지는 않았을텐데…-- 실제로 [[중일전쟁]] 당시 관우를 상당히 존경했던 [[일본군]] 장교가 [[난징]]에 소재한 여몽의 묘를 훼손하기까지 했다는 루머도 존재.[* 이 부분은 난징대학살 관련 자료에도 전혀 없이 인터넷에서만 퍼져 있는 루머라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물론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중국에게 패배하였기 때문에 일본은 중국의 문화유산을 훼손했다는 죄로 [[UN]]의 배상 권고 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이런 루머가 나올 정도로 1990년대까지 연의에서는 여몽을 악역 수준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대부분. 그리고 [[명성황후 민씨|명성황후]]가 [[임오군란]] 때 군인들을 피해 도망다닐 때 [[관우]] [[진령군|귀신이 씌웠다는 무당]]을 만난 일화도 있다. 그 무당이 여씨 집안을 [[관우]]를 죽인 [[여몽]]의 후예라고 저주하는 신탁을 내려서 안 그래도 소론이라 비좁았던 여씨 집안의 등용길이 막혀버렸다고(…). 참고로 이것은 선무당이 사람 잡은 선례 중 하나. 아니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1,700년전 조상이 한 행동을 1,700년도 더 지난 뒤의 후손에게 따지는 건 뭔 짓거리란 말인가. 이것은 [[명성황후 민씨|명성황후]]에 대한 민심을 아주 잘 설명해주는 일화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