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국지연의/피해자 (문단 편집) === '''[[주연(삼국지)|주연]]''' === [[주치(삼국지)|주치]]의 양자로,[* 주치의 여동생의 아들이였으나, 후사가 없던 주치가 그가 13세 때 [[손책]]에게 건의해 양자로 맞이했다. 원래 이름은 시연.] [[손권]]의 학우이며, 문무 겸장에, 대륙의 중심인 [[형주]]의 중심인 강릉을 철벽같이 지켜낸 자로서, 위의 [[문빙]]([[위(삼국시대)|위]] 항복 후, 강하를 '''30년'''동안 지켜낸다.)과 쌍벽을 이루는 '''최고의 수문장''' 병사들이 대부분 병에 걸려, 싸울 수 있는 자가 5천 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황#s-1|서황]], [[장합]], [[하후상]], [[조진]]이 이끄는 위의 대군을 맞이하여 강릉을 6개월간 지켜내 [[위(삼국시대)|위]]는 강릉 함락에 실패하지만 [[삼국지연의|연의]]에서는 이릉에서 패주하는 [[유비]]를 추격하다가 유비를 구하러 온 [[조운]]에게 사살당했다. 연의에서의 묘사만 보면 뭐 이런 놈이 기라성 같던 대도독 라인에 끼어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릉대전|이릉전투]]가 일어난 것은 '''222년'''인데, 실제 [[주연(삼국지)|주연]]이 사망한 연도는 '''249년'''이다.[* 향년 68세. 그가 죽자, [[손권]]이 [[여몽]]과 [[능통]] 다음으로 슬퍼했다 한다. 직접 상복을 입고 장례식을 거행했다.] 주연은 [[삼국지연의|연의]]에서 그를 죽인 [[조운]]보다도 '''20년'''이나 더 오래 살았는데, 소설적 재미를 위한 [[조운]] 띄워주기라고 하기에는 죽은 시기가 너무 이르다. 그래서 오나라의 이궁의 변이라든가, 작피 전투 등 오나라의 합비신성 침공 이후로 아무런 소식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마도 [[관우]]의 죽음과 관련해서 피해를 본 거라고 할 수 있는 케이스. [[정사 삼국지|정사]]에서는 [[오(삼국시대)|오나라]] 최고의 문무겸장 겸 중진 중 한 명으로, 심지어 관직은 '''좌대사마, 우군사'''[* 좌대사마=대사마. [[오(삼국시대)|오나라]]는 대사마가 좌, 우 두개로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대사마는 최고등급인 1품관.]까지 오른다. [[반장(삼국지)|반장]]과 함께 [[관우]]를 생포한 공으로 관직을 제수받았고 3대 도독인 [[여몽]]이 죽기 전에 자기 후임으로 [[주연(삼국지)|주연]]을 추천한 것도 있고 하여[* [[주연(삼국지)|주연]] 대신 도독이 된 게 바로 [[육손]]. 대신 [[주연(삼국지)|주연]]은 나중에 좌대사마까지 승급한다.] [[나관중]]의 미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판본에 따라서는 그냥 [[조운]]에게 당해서 쓰러졌다고만 나오지 죽었다고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게다가 아들인 [[주적(삼국지)|주적]]도 대도독인데, 아버지가 빨리 죽어서 '''아예 나오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