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궤구고두례 (문단 편집) == 사례 == 청나라엔 300년간 12명의 황제가 있었으며 이들은 신하를 접견할때 삼궤구고두례의 예법을 받았기 때문에 일일이 사례를 나열할 수는 없다. 그나마 이와 관련한 유명 [[에피소드]]를 꼽자면 다음과 같다. * 1637년 2월 24일 [[병자호란]]에서 결국 버티지 못한 [[조선]] 측이 항복하기로 결정한 뒤 청나라 측의 압박으로 인해 [[정축하성]] 때 조선 인조가 청 태종에게 이 예법을 행하였다. * 150년 뒤인 [[건륭제]] 시절(1792년) 영국의 사신인 매카트니가 건륭제와 대면할 때 청나라 측에서 삼궤구고두례를 하라고 하자 "서양에선 신에게만 두 무릎을 꿇고, [[임금]]에게는 무릎 하나를 꿇는게 전부다."[* 실제로 서양인들은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신분]] 차이를 뒤로하고 같은 '인간'에게 두 무릎을 모두 꿇거나 머리를 여러번 조아리는 것이 '[[동양]]의 '''[[미개]]한''' 풍습'이라고 생각해오며 이에 대해 모멸감을 드러내기도 했으며 실제로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케메네스 왕조|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한 이후, 신하들한테 엎드려 절을 하는 페르시아식 예법을 하라고 강요하자, 분노한 신하들이 대왕을 죽이려는 [[반란]] 음모를 꾸미다 적발되어 처형되기도 했다. 이는 '''인간 취급도 못 받는''' [[노예]]라면 모를까 왕과 신하 사이의 관계라곤 해도 동양의 미개한 풍습을 강요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기 때문이었다.][* 우습게도 [[현대]]에도 비슷한 게 있다. 바로 [[태국]]인데 '''[[태국 국왕|국왕]]에게 무릎을 끓어야 하는 것'''. 문제는 2004년에 방콕 국제 영화제에 참가하여 공로상을 받게된 [[올리버 스톤]]에게도 왕이 상을 줄 때 이런 요구를 하여 스톤은 분노했고 시상이고 뭐고 거절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당연히 영화제 측도 [[나라망신|세계적 망신]]이 될테니 말이다. 결국 고민 끝에 계단에서 좀 내려간 상태로 받는 것으로 서로 합의했다. 이 영화제는 2008년 [[뇌물]] 및 온갖 논란으로 영화제가 사라져 나중에 방콕 태국 국제영화제라는 새 이름으로 1회부터 다시 열리고 있으며 2021년에 7회 영화제가 개최되었다.]라거나 [[러시아 제국|러시아]]의 [[카자크]] 기병들은 "[[차르]]의 앞에서도 말에서 내리지 않는다"라며 삼궤구고두례를 거절하려 했지만, 청나라는 싸그리 무시하고 삼궤구고두례를 강요하기도 했다. 당연히도 매카트니는 끝까지 이를 거부했고 결국 [[대영제국|영국]]과 청나라의 외교는 나중에 [[아편전쟁]]으로 청나라가 패배하기 전까지는 이루어지지 못했다.(참고로 1865년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대통령]]이 [[리치먼드(버지니아)|리치먼드]]를 방문했을 때 그곳 흑인들이 무릎을 끓자 링컨은 "이래서는 안된다. 무릎은 신 앞에서만 끓어야 한다"라고 한 일이 있다.) * 위 사건 이후 시간이 지난 뒤 이에 대한 일화는 서양에서까지 크게 퍼졌고 네덜란드의 사신들은 [[건륭제]]를 찾아올 때 그에게만이 아니라 그가 하사한 포도송이가 담긴 은쟁반을 향해서도 머리를 조아리며 지나치게 예를 표했다. 이는 네덜란드의 입장에서 체면보다는 청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맺음으로서 생기는 이득이 우선되었기 때문인데, 청나라측도 바보는 아닌지라 이를 꿰뚫어봤고[* 애초에 외국 사신에게 이런 방침을 강압적일정도로 요구한것 부터가 "[[중화사상|감히 '''황제'''가 있는 청나라가 다른 나라와 공평하게 무역하는게 말이 되냐]]"는 청나라측의 의사표명이었다. 한마디로 청나라측은 애초에 '''공평한 위치에서의 무역을 할 생각이 결단코 없었던 것이다'''. 청나라는 어디까지나 이전까지 유지된 [[조공]]무역만을 인정했다.] 결국 네덜란드 사신은 후하게 대접받은 것과는 별개로 무역 허락은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야했다. * 역으로 [[의화단 운동]]이 끝난 후 [[독일 제국|독일]]에 사죄사로 간[* 무려 사죄사까지 보낸 이유는 [[의화단|의화단원]]에 의해 주중 '''공사''' 클레멘스 폰 케텔러 남작이 살해당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웬만하면 공사가 주재국 외교사절의 탑이었다. 현대로 치면 그 나라 주재 대사가 살해당한 셈이다.] [[순친왕]] 재풍은 [[카이저|독일 황제]] [[빌헬름 2세]]에게 삼궤구고두례로 사죄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독일측이 청나라에 굴욕을 줄려고 강요한 것이지만 고두가 유럽 외교가에서 전제군주에 대한 야만적 복종행위로 여겨져서 절대로 받아들여선 안된다고 입장을 분명히 하고 청나라에서도 외국 사절들에게 더 이상 강요하지 않게 된 상황에서 나온 터무니없는 무리수였다. 8국 연합국은 고두의 정치적 의미에 주목하여 독일이 중국을 단독으로 복종시키려는게 아니냐고 쌍심지를 떴고, 지식인들은 고두의 종교적인 의미에 집중하면서 중국인들에게 강요할 수도 없고, 기독교도인 카이저가 받아선 안되는 것이라고 지적했으며, 중국 사절단은 아예 카이저에게서 훈장도 받았던 음창을 통역으로 배치하고 영국, 프랑스, 러시아에서 훈장과 기사작위를 받은 고위 사절들을 대거 배치해서 이들에게 고두를 막무가내로 요구할 수 없게 배수진을 쳐버렸다. 결국 전세계 언론의 비난 속에서 카이저는 아예 재풍과 음창만 자신을 알현하게 함으로 발을 뺄 수밖에 없는 개망신을 당했다. 독일 언론에서조차도 중국인들에게 졌다고 독일인들이 중국인들에게 고두하는 자학 만평을 쏟아냈을 정도니 말 다했다. * 영어로는 '고두'의 [[광동어]] 발음을 음차한 'kowtow'라는 단어로 소개되었으며, 상대에 대한 굴종(grovel)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일본에서 [[도게자]]를 한다거나, 한국에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는 것과 이미지가 비슷하다. * 청대의 풍습이므로, 그 이전의 작품에서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식의 예를 황제에게 보이는 건 [[창작물의 반영 오류|재현 오류]]이다. 이 같은 점은 중국인들도 의외로 잘 모르는 모양으로, 왕샤오레이(王曉磊) 같은 프로 작가도 <[[삼국지 조조전]]> 같은 작품에서 [[조조]]가 황제에게 삼배구고두례를 하는 장면을 묘사하기도 하지만, 당연히 오류이다. <조조전> 말고도 수많은 [[중국 영화]]들이 이 덫에 걸린다. * 한가지 재밌는 일화로 1982년, 영국령 홍콩 반환 문제를 협상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던 대처 수상은 당시 지독한 감기에 걸려 있었는데, 회담을 마치고 회담장이었던 인민대회당을 나오다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하필이면 그 모습이 딱 천안문 광장의 마오쩌둥 초상화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꼴이라서 덩샤오핑은 대처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이 사진과 영상을 중국 언론에 내보내지 말라고 지시했지만, 홍콩과 영국 기자들에겐 당연히 알바 아니었으므로 전 세계에 이 굴욕짤이 퍼지고 말았다. 홍콩에서는 이를 두고 영국 수상이 마치 중국에 굴복한 것같다고 불안에 떨었는데, 매카트니 이후로 드디어 영국 사절이 중국 황상에게 삼궤구고두례를 했다는 블랙 유머가 퍼지기도 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삼전도의 굴욕, version=305, paragraph=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