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청태현 (문단 편집) == 종말을 고한 [[현대 유니콘스]], 그리고 그 이후 == 현대는 인천을 떠나 서울로 연고 이전을 시도하나 [[목동 야구장]] 리모델링 문제와 [[LG 트윈스|서울 연고]] [[두산 베어스|두 팀]]에게 줄 보상금 문제 때문에 바로 서울에 입성하지 못하고 임시 연고지로 수원시에 머물게 됐다. 한마디로 준비도 안되었으면서 억지로 추진만 하고 해결 못하는 꼴. 그러나 수원시는 1996년부터 프로축구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이 리그에 참가해 스타선수들을 영입해 첫해부터 좋은 성적을 내었고 1998년과 1999년 K리그 우승을 차지 하면서 축구의 도시가 되었다. 게다가 수원시민으로서도 언젠가는 서울로 떠날 현대에 큰 정을 붙일 이유도 없었다. 이렇듯 아무런 대책없이 불도저식의 무리한 연고이전을 강행한 현대는 크보에서 흥행 최악의 구단의 오명을 썼다. 거기에 모기업인 [[현대전자]]의 계속되는 적자와 범 현대그룹 후계구도 싸움인 왕자의 난을 거치며 모기업마저 암운이 드리워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결국 [[왕자의 난#s-2.1]] 이후 [[정몽헌]] 현대 회장의 자살과 현대전자의 지원 중단으로 파산 위기에 처했던 현대는 KBO와 야구단 대주주였던 [[SK하이닉스|하이닉스반도체]] 스스로의 뻘짓[* 후술하지만 [[현대자동차그룹]]에서 [[2001년]] 인수를 제안했으나 대주주였던 하이닉스가 인수금액 900억드립을 치면서 결렬되게 만들었다.]에 힘입어 종말을 고했고, [[STX]], [[농협]], [[KT]]의 현대 인수 시도가 차례로 무산되었다. KBO가 최후의 수단으로 접촉한 [[이장석]]의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현대를 해체 후 선수단만 인수해서 재창단하는 형식으로 [[우리 히어로즈]]가 신생구단으로서 창단된다.[* 이 때문에 2008년 드래프트에서 현대가 지명했던 신인선수들은 그대로 우리로 입단했으며, 현대 소속의 군복무 선수들도 제대후에 모두 우리 소속이 되었다. 2007년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에서 현대가 지명했던 [[김병현]]도 2012 시즌을 앞두고 넥센에 입단했다.] 해체 후 재창단이라면서 계보가 단절된 신생구단이라는 '''모순'''이 발생했던 이유는 당시 '''현대의 막장 상황'''에 기인하는데, 우선 하이닉스가 진작에 GG를 친 상황에서 근근히 이어지던 범현대가의 지원도 끊긴 [[2007년]]의 현대는 순전히 KBO의 자금지원으로 운영되었다. [[2001년]]과는 달리 하이닉스는 인수금을 내놓으라고 큰소리 칠 상황이 아니었던 것. 또한 자금력이 빈약했던 센테니얼에서는 [[LG 트윈스|재창단의]] [[KIA 타이거즈|적절한 예]]와는 달리 KBO 가입비 120억 원의 분납을 조건으로 현대의 인적 자산, 즉 선수단은 대부분 고용승계하는 대신, 물적 자산은 포기하고 외형상 '''별개의 법인'''으로 신생구단을 탄생시키겠다는 제안을 걸었다. 밑에서도 언급되겠지만 당시 이장석은 현대의 승계보다는 신생구단의 창단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결국 야구팬들이 바라던 대기업의 인수도 아니었고 재창단이라 부르기도 뭔가 미묘한 모습이 되긴 했지만 사실상 현대의 명줄을 쥐고 있던, 그리고 아무도 야구단을 인수하지 않으려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8구단 운영의 파행은 막아야 했던 KBO가 센테니얼의 제안에 콜을 부르면서 현대의 해체와 함께 우리가 창단된 것. 어찌 되었든 이로 인해 현대와 우리의 연계성은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다. 근데 사실은 이것이 단순히 자금력 부족이나 센테니얼에서 먼저 제안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니다. KBO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은 팀만 해체되어서 8구단 리그가 7구단으로 바뀌게 되는것이다. 실질적으로 같은 팀이지만 공식적으로 역사와 빚을 인수하지 않는 상황이 생긴다고 해도 8구단 체제를 유지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게 답이다. 만약 태평양 때나 LG 때처럼 넘긴다고 해도, 법적으로는 현대의 주주인 하이닉스가 운영권을 양도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법정관리에 들어갈 정도로 회사가 어려웠던 하이닉스 측에서 초기투자비용 운운하며 양도 비용을 요구하게 될 경우 법적으로는 권리가 있으므로 그 돈을 줘야 된다.[* 사실 잘하면 [[화폐|돈]]을 주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려면 하이닉스와 인수자, KBO 사이에 꽤 복잡한 법정 다툼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법정 간다고 100% 승소한다는 보장도 없고. 더구나 팬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프로야구단과 KBO가 법정에서 운영권 문제로 소송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지에 좋을 리가 없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안 팔리는데 인수 비용이 올라가게 되는 건 둘째치고, 현대가 저 지경이 될 때까지 쳐다보지도 않아서 KBO 기금으로 운영했건만, 구단 팔린 뒤에는 하이닉스가 인수 비용을 챙겨가는 꼴이 되는데, 이건 상식적으로 봐도 기존 구단들이나 KBO가 도저히 찬성할 수 없었다. 실제로 많은 현대 팬들의 생각과는 달리 '''2007년 KT는 [[http://m.sport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01&aid=0001873249|고작 60억원대의 가입금에 해체 후 재창단 방식]]으로 KBO와 합의를 보았다.''' 금액으로 따지자면 센테니얼은 오히려 KT의 2배인 120억을[* 다만 KT의 경우엔 창단 이후 KBO한테 돈을 더 투자하는 조건으로 싼 가입금으로 합의를 봤었다.] 가입금으로 지불했으니 센테니얼이 자금부족으로 승계실패 운운은 전혀 근거가 없는 소리다. 결국 센테니얼이 아니었어도 어찌 되었든 삼청태현 계보의 단절은 예정된 결말이었다는 소리다. 그리고 SK는 [[2000년]]에 현대에서 '인천 야구의 적자'로서의 상징성을 갖고 있던 [[김경기]]를 데려오고,[* 사실 김경기도 SK로 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김경기 자신이 인천에 대한 애착심이 컸던 선수였던 데다, 1999 시즌부터 용병타자의 도입과 부상으로 팀 내에서 자리가 없었고 선수협을 지지했던 [[전준호(1969)|전준호]]를 폭행해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등의 행위를 해 현대 선수단 내에서의 입지가 상당히 줄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2000년]] 이후로 키움의 팬이 된 사람들은 김경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2002년]] [[8월]]에는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이벤트성 유니폼 데이를 펼치면서 '''삼미 유니폼'''을 모티브로 한 이벤트 유니폼을 선보이는 등[* 뒤에서 언급될 태평양 데이와 엮어 이 행사를 삼미 데이로 아는 사람이 많으나, 실제 이름은 '''"꿈★의 이벤트"''' 였다. 당시 2002 월드컵에서 등장했던 "꿈★은 이루어진다!" 키워드에 맞춰 SK의 포스트시즌 진출 염원을 담았다. 하지만 이는 구단측의 설명일 뿐이고, 실제로는 당시 현대측의 반발로 삼미란 이름을 사용하지 못한 것이다.] 현대의 연고지 이전으로 야구 자체에 발길을 끊은 인천 시민의 발길을 야구장으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고생한 결과 SK표 스포테인먼트가 정착하고, [[김성근]] 감독 체제 첫 해에 [[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등에 업고 점점 인기를 높여가고 있었다. 그런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