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상근예비역 (문단 편집) == 역사 == [[1994년]] 12월 31일 [[방위병]] 제도가 폐지되면서 부족한 지역방위 인력을 충원하고, 상비군 감축에 대비한 대체전력 확보를 위해 [[1995년]] 1월 1일 시행된 [[병역]]제도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게 생긴 가장 큰 이유는 [[1975년]]생 때문이다. 방위병을 폐지해버리면서 공익도 동시에 시행된 바람에 절대다수의 75년생은 1994년에 징병검사 수검 당시 이들의 복무 선택권이 현역병 아니면 평시면제 둘 중 하나밖에 없었다(고등학교 중퇴 이하의 학력이어야 보충역을 받을 가능성이 보였다). 그러다보니 다른 년도 출생자라면 방위병이든 공익근무요원이든 다른 형태로 병역을 이행했겠지만, 순전히 1975년생인 이유만으로 4급임에도 불구하고 현역병으로 징집된 억울한 사람들을 그나마 일부 구제해 줄 필요가 있는데, 어차피 지역방위 인력도 필요하니 겸사겸사로 만든 게 상근예비역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세월이 흘러 대상자가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75년생 4급 현역 대상자는 무조건 최우선적으로 상근예비역으로 편성시켰다.] 방위병은 [[보충역]](4급)이었고 소집 해제 당시 계급이 [[상등병]](당시 입영 후 18개월이 경과한 경우)이나, [[이등병]][* 현재는 입영 후 6개월이나 과거 입영 후 12개월이었던 시절의 경우]인 데 반해, 상근예비역은 만기 소집해제 시 [[병장]] 계급인 점이 다르다. 단, 상근예비역 제도가 시행되었던 [[1995년]]부터 [[1999년]] 1월 1일 이전까지는 1년간 전방 부대에서 내무 생활을 해야했다. 하지만 현역병과 위화감 등의 문제가 제기되어[* 1년간 현역병 복무할 때는 곧 나갈 녀석이라 하여 좋지 못한 대우를 받고, 상근예비역 전환 후 부대에 와보면 다시 막내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구타 등 가혹행위도 생각보다 많았다. 이 때는 현역병들도 의외로 '''야 쟤네들 나가는 건 좋아보이긴 하는데 그래도 좀 불쌍하다'''는 인식이 많았다. 심지어 당시 상근예비역 생활을 겪은 사람의 증언으로는, '''상병 달고 전출가서 새 부대에서 생활하는데, 일 이등병 놈들이 경례를 안 했다'''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짬]]대우를 안 해준 것. 자신이 원한것도 아닌데 이때는 밖에서 술자리도 많아서 끌려가서 술시중도 자주 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군인이 많을 시절이라 상근부대도 지금처럼 소수가 아니었고 그 말은 선임도 많았다는 얘기다.][* 이 시기 상근예비역들은 또 다른 의미로 좀 전설인게 상근예비역이라도 연간 행군량을 채워야하기에 지역방위사단에 현역으로 근무 중인 조교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40킬로미터 단위로 행군을 해야 했다. 문제는 이 시기 상근 예비역들이 전원 전방부대에서 1년간 근무하다 왔다는 것. 쉽게 말해 후방에서 조교 생활하던 현역들과는 차원이 다른 훈련을 하다 왔다는 뜻이라 조교들이 8~10시간을 잡고 하던 40킬로미터 행군 정도는 저녁 6시 출발해 6시간이 지나지 않은 자정 이전에 부대 복귀를 하는데 그것도 하품해가면서 속보로 걸어대서 현역 조교 인원들이 그들을 쫓아가느라 개고생을 했다고 한다. 당시 조교들이 초창기 상근을 무시한 건 방위병들의 대체인력이란 인식 때문인데 행군 한 번 뛰면 이들이 방위병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걸 인식했다는 소문이 있다.] 1999년 1월 1일 부터 '1년간 전방 부대 내무생활'이 폐지되어 현재와 같이 바로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하게 되었다. 저출산으로 인한 병력 부족 및 복무기간 단축에 따른 인원 소요 감축에 대비하기 위해 각종 [[현역]] 자원 [[전환복무]][* 2023년 5~6월 폐지. [[의무경찰]](해경 포함), [[의무소방대]]], [[보충역]] 대체복무제도[*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 [[공중보건의]] 등]를 폐지할 계획인데, 이러한 일환으로 상근예비역 역시 2011년까지만 모집하고 그 이후부터는 자연감소시키려 하였으나, 아직도 선발하고 있다. 예비군지휘관 직속 병들이 상근예비역인데 부대에서 영외인 [[주민센터]]로 현역병을 출퇴근시키기는 여러모로 번거롭고, 출산 장려 차원에서 이 제도를 활용하는 등으로 아주 없애긴 어렵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지원한 사람 전원이 합격되는 경우가 허다[* 1995년 당시 [[징병검사]]를 받던 도중 지원서를 기재했는데 입대 통지서로 상근예비역 복무로 나온 바 있다.]했는데, 이후로는 자녀가 있는 자만 지원이 가능하고, 나머지는 징병검사 수검 완료한 입영대상자 대상으로 병무청에서 선발하여 입영통지서를 보내주는 방식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