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상당산성 (문단 편집) == 내용 == 본래는 [[백제|백제시대]]부터 토성이 있었는데, [[조선|조선시대]] [[숙종(조선)|숙종]] 42년(1716) 석성으로 개수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대한민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대도시의 성곽들은 헐리거나 소실되는 사례가 많으나, 상당산성은 시 외곽의 고개 너머 산골에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 성곽의 형태뿐만 아니라 주변의 자연 풍경이나 이동로의 구조까지 잘 보존되었다. 시 외곽에 존재해서 접근성이 애매한 것이 산성과 주변 환경을 비교적 잘 보존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 --절묘한 위치선정-- 내부시설 다수와 성벽 위 여장 같은 시설들은 소실되었지만, 부실하게 [[복원]]하느니 이대로 두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한반도의 [[성(건축)|성]] 건축 형태뿐만 아니라 풍경까지 잘 남은 성곽으로서 가치가 높다. 조선시대의 지방 촌락이 잘 보존된 [[낙안읍성]]과 함께 보존상태로만 본다면 조선시대 [[산성]]의 풍광을 대충이나마 찾아볼 수 있는 유적이다. 대도시권 성곽에 비하여 많이 갈아엎지 않았으면서 적당한 규모라서 전통적인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다. || {{{#!wiki style="margin-bottom: -5px; margin-left: -10px; margin-right: -10px; margin-top: -5px" [[파일:2016012113584105.jpg|width=100%]]}}} || || {{{#ffffff '''상당산성의 서문 미호문'''}}} || 다른 산성들처럼 시대를 거치며 돌이 파내어져 초라한 토대가 드러난 부분이 많으나 그런 곳조차도 평가가 좋고, 쌓아올린 돌담이 예쁘게 보존되는 곳도 많다. 산성을 올라가면 청주 도심이 보이며, 식당이나 관광시설이 들어서 있고 산책로가 있다. 성은 동그란 모양으로 작은 골짜기를 싸는데, 안쪽에는 마을이 있어서 여러 가지 토속음식들을 판매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