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상도동계 (문단 편집) == 명칭의 유래 == 김영삼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서울)|상도동]]에 거주하여 1980년대의 언론들은 김영삼의 측근들에게 상도동계라는 표현을 붙이기 시작하였다. 반대로 김영삼의 라이벌이자 동지인 [[김대중]]은 아주 잠시 [[일산신도시]]에 거주한 기간을 제외하면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동]]에 거주하여 김대중의 측근들은 언론에서 [[동교동계]]로 불렀다. 김영삼은 1950년대 정치에 입문해서 1970년대부터는 민주화를 외치는 야당의 중진의원이자 대통령 후보급으로 성장했지만, 당시에는 김영삼계 혹은 김영삼의 호를 따서 거산(巨山)계라고 했지 상도동계라는 표현은 쓰이지 않았다. 경쟁관계인 [[동교동계]] 역시 마찬가지로 1970년대에는 [[김대중계]] 혹은 김대중의 호를 따라서 후광계라고 했지 동교동계라는 표현은 쓰이지 않았다. 상도동계 혹은 동교동계라는 표현은 1980년 [[신군부]]([[하나회]])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김영삼, 김대중과 그 직계 정치인들을 모조리 정치활동 규제 대상자로 묶어서 제도정치권에서 추방하고 [[신민당(1967년)|신민당]]마저도 없애버리면서 생겨난 신조어이다. 졸지에 둥지를 잃고 거리로 내몰린 이들은 재야 세력들과 함께 민주화 투쟁에 나섰는데 [[보도지침|독재정권의 언론통제]]에 묶여서 김영삼, 김대중의 이름을 언론에서 직접적으로 쓰기는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언론사들이 이리저리 돌려서 쓰다가[* [[김영삼|YS]], [[김대중|DJ]], [[김종필|JP]]처럼 이름의 이니셜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도 이 당시의 일이다. 당시 이들의 이름이 언론에 언급되는 것조차 기피하던 --대머리-- [[전두환|각하]]의 심기를 헤아려 이니셜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각자의 서울시 내 자택 소재지에서 따온 상도동계, 동교동계라는 명칭이 등장했다. 참고로 이런 거주지+계 명칭은 임시방편이고 직관적이지도 않아서였는지, 신군부 퇴진 이후 등장한 정치세력들은 [[친노]], [[친문]], [[친이]], [[친박]], [[친홍]], [[친유]], [[친무]], [[친황]], [[친윤]] 등과 같이 [[친]]+중심적 인물의 [[성씨]]나 이름의 특정 글자를 붙여 [[언론]]에서 짓는 것이 일반적이게 되었다.[* 다만 이에 대해 외국처럼 연속성이 있는 이름이나 이념, 사상 등을 나타내는 계파명도 아니고, 단순히 한 인물과의 친함 정도를 따져 계파명을 따진다는 것부터가 한국 언론들의 '''수준 낮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계파를 일컫는 '계'라는 용어도 여전히 사용되나 신군부 이전처럼 [[손학규계]], [[이재명계]] 등 중심 인물의 성명+계의 형태로 회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