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상륙장갑차 (문단 편집) == 초기 == 사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도 시험적인 상륙장갑차 [[LVT|LVT-1 엘리게이터]]가 존재했지만, 성능이 어떨지 몰라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는 소수만 투입되었다. 그에 반해서 [[태평양 전쟁|태평양 전선]]에선 꽤나 잘 써먹었다. 특히 데뷔전인 [[타라와 전투]]부터 시작해서 환초가 많은 지역에서 탁월한 수송능력을 보여주었다. 일례로 타라와를 방어하던 [[일본군]] 장교가 포로로 잡힌 뒤 산호초를 건너오는 LVT-1 엘리게이터 상륙장갑차를 보고 무척 놀랐다고 진술할 정도였다. 이는 일본군의 상륙 방어계획이 수심이 얕은 산호초 지대에는 상륙주정이 들어올 수 없으니 상륙부대가 멀리 산호초에서부터 걸어서 접근한다는 것을 전제로 짜여있었기 때문이다. 타라와 방어부대는 상륙주정에서 내린 미 해병대가 완전히 노출된 상태로, 심하게는 가슴까지 차오르는 바닷물을 헤치고 느릿느릿 전진해오면, 산호초부터 해변까지의 살상지대에 장애물과 전 화력을 집중해 초전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다는 그럴싸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마이크 타이슨|문제는 이 계획이 상륙장갑차한테 쳐맞기 전까지만 그럴싸했다는 것이다.]] 타라와 상륙이 시작되자 난생 처음보는 LVT-1상륙장갑차들이 빠른 속도와 장갑방어력으로 산호초 살상지대를 큰 손실 없이 지나쳐 바로 해변에 해병대원들을 무더기로 쏟아놓았고, 일본 측 방어계획은 시작부터 완전히 헝클어져 버렸다. 또한 [[타라와 전투]]에서는 상륙돌격장갑차의 이런 초반 맹활약에도 해병대와 상륙장갑차 부대 모두가 해변에서 무시무시한 손실을 입었지만, 상륙장갑차가 없었더라면 '''아예 작전 자체가 성공하지 못했으리라는 것'''이 해군과 해병대의 공통된 결론이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USMC-M-Tarawa-p36.jpg]] [[타라와 전투]]에서 유기된 미군 LVT-1. 전투 종료 직후에 촬영된 모습이다. 이러한 활약으로 세계대전의 말기에는 LVT-2, LVT-3, LVT-4 까지 발전하여 후방 램프도어나 자체 방어무장을 장착하고 화력지원용 로켓발사기 등을 장착하여 상륙전뿐 아니라 상륙 후에도 해병대의 작전을 지원하게 되었지만 물에 떠야 하는 장갑차인 만큼 어느 정도 방어력을 희생해야 했기 때문에 태생적인 방어력 부족은 어쩔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전에 많이 사용하고 투입된 만큼 많은 손실을 입기도 했다. 후에 상륙장갑차는 [[인천 상륙작전]]에도 투입되었다. 과거 사용되던 상륙용 주정을 대체한다는 목적 때문인지 일반적인 [[병력수송장갑차|APC]]보다 크고 널찍한 데다 탑승인원도 많다. 상륙장갑차로서는 최대의 크기를 자랑했던 [[LVT-5]]는 기본 [[보병]] 탑승인원이 22명이고, 낑겨 넣으면 47명 이상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베트남전에서 한국 해병대는 LVT-5에 1개 [[소대]]를 넣어 작전에 투입한 적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