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상우춘 (문단 편집) == 생애 == [[원나라]] 말 혼란기인 [[1352년]]([[혜종(원)|지정]] 12) 도적떼가 되었다가, [[1355년]](지정 15) [[주원장]]에게 귀순하였다. [[1356년]](지정 16) 관군총관(管軍總管)이 되었다가, [[1357년]](지정 17) 통군대원수(統軍大元帥)로 승진했다. [[1358년]](지정 18) 도독마보수군대원수(都督馬步水軍大元帥)가 되었다. [[1359년]](지정 19) 동첨서추밀원사(同僉書樞密院事)가 되었다가 첨서추밀원사(僉書樞密院事)로 승진했다. [[1361년]](지정 21)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었다. [[1364년]](지정 24) 평장정사(平章政事)가 되었다. [[1367년]](지정 27) 악국공(鄂國公)으로 봉해지고 [[북벌]]에 나섰다. [[1368년]]([[홍무]] 1) [[베이징시|대도]]를 함락했다. [[1369년]](홍무 2) 북벌에서 돌아오던 중 죽고 개평왕(開平王)이 추봉(追封)되었다. [[시호]]는 충무(忠武)다. 용맹하고 결단력이 높은 장수로 평가된다. 군대에서의 지위는 [[서달]] 바로 다음으로 주원장 군벌 초기에 서달과 [[탕화]] 등이 따로 지휘부를 꾸려 활동하게 되자 대신 주원장의 직속 지휘관이 되었다. 이후 서달을 따라서도 자주 종군하였으며 특히 북벌에서 크게 활약했다. [[태원]]에서 [[코케 테무르]]를 무찌르는데 공을 세웠고, 전녕(全寧)에서는 야속(也速)을 토벌하였다. 10만 명을 거느리면 천하를 [[종횡무진]]으로 누빌 수 있다 하여 상십만(常十萬)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원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개선하던 도중 유하천(柳河川)에서 원인불명의 질병으로 급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