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상지대학교 (문단 편집) === 대학 민주화를 위한 노력과 성과 === 지금은 모두 정리되었지만, 1980년대와 2010년대 사학비리가 심해 [[흑역사]]가 존재했었다. 종전 구 재단 이사장인 [[김문기(정치인)|김문기]]는 당시 경영이 어렵던 상지대에 1972년 임시이사로 들어와서 설립자인 원홍묵 선생에게 학교를 유상 인수하였는데,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던 그는 불과 2년만에 정식 이사장으로 폭풍같은 취임을 하게 된다. 문제는 이사장 취임이후 단 한번도 이사회를 열지 않고 대학을 사유화해버려 마음대로 주무른 것. 이렇게 학교를 사유재산인양 혼자서 독단적으로 운영하다보니 사학 비리가 종합 선물 세트로 뻥뻥 터져나왔다. 학생을 부정입학시키고 교수 임용과정에서 뇌물까지 받고 학교 땅을 자기 개인 명의로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06333|등록]]까지 했다. 당연히 학생들의 반발이 심했는데, 항의하는 학생들을 음해하려고 만든 짓이 바로 용공조작사건이다. 바로 학생들이 농성하는 현장에 교직원들이 "가자! 북의 낙원으로"라는 내용이 담긴 유인물을 뿌린 [[막장]]스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32074|사건]]. 그래서 비리재단에 항의하던 학생들은 졸지에 [[간첩]]으로 몰려서 원주경찰서에 연행되어 [[경찰서 정모]]를 가지게 되었으나 이후 경찰 수사에서 김씨가 학생들을 [[모함]]하기 위해 벌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71975|자작극]]으로 드러났으며 당시 삐라를 뿌렸던 학생과 직원은 "김씨의 사위이자 총장 비서실장의 지시였다"고 양심선언을 했다. 당시 [[이재오]] 의원도 "자기 목적을 위해 선량한 학생들을 용공으로 몰면서까지 학교를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행위"라며 비판했다. 이후 김씨는 [[김영삼]] 정부 시절 공직자 재산공개 파동 때 사정대상으로 꼽히며 대검 중수부가 수사에 나섰고, 공금 횡령 혐의 및 한의학과 부정 입학 대가로 1인당 1억원씩 받아 챙긴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8174|혐의]]로 구속되었고 공금 횡령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으나 부정입학은 유죄로 판결 받아 대법원에서 1년 6개월 형을 선고 받아 복역했다.[* 이 와중에 [[14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서 당선되기도 했으나 복역과 동시에 당선무효되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34054.html|#]]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727076|검찰수사]]에서 밝혀진 비리는 참으로 다양했는데, 당시 신문 보도를 보면 재단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돈을 받고 한의학과에 학생을 부정입학시켰으며 부동산 투기 의혹, 관계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며 압력을 행사한다는 의혹 등 사학에서 할 수 있는 비리는 다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결국 관선이사가 파견되어 1993년 8월 [[김찬국]] 연세대 교학부총장이 신임 총장으로 오게 된다. 이후 고령으로 인해 업무가 어려워지자 관선 이사회에서는 1999년 10월 12일 4대 총장으로 명망높은 교육자였던 통일부총리 출신인 [[한완상]]을 선출한다. 그리고 10월 13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상지대 용공조작 사건과 관련된 증언과 녹취자료가 공개되었고 당시 학생과 주임이 조작임을 양심선언하면서 사건이 폭로된 것이다. 한완상의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61508.html|회고]]에 따르면, 취임 일주일이 지나 학생회단이 총장실에 방문하여 봉투를 전달하였는데, 천만원짜리 수표가 들어있어 놀라 물었는데 학생회 간부들이 봉사장학금을 떼어 모아 더 어려운 학생을 도와달라며 부탁한 것이었다. 오랫동안 재직했던 서울대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며 감동했다고... 김문기는 현재까지도 자신이 설립자라는 드립을 치고 있는데, 일고의 가치도 없는 소리다. 앞에서 봤듯이 원래 있던 학교를 김씨가 돈으로 인수한 것은 명백하고, 비리로 물러난 이후 임시이사회에서 정관의 설립자를 원홍묵으로 바꾸자 김씨는 법원에 소송을 냈는데 대법원에서 설립자를 원홍묵으로 한 것은 합법이라고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30234|판결]]을 내려버렸다. 적어도 [[김찬국]] 박사가 상지대학교 총장이던 시절의 상지대학교는 강원도 내부에서만큼은 지방 명문 사립대로서 명성을 굳건히 했었던 대학교였으나 김문기에 의해서 김찬국 박사가 상지대학교 총장에서 해임되면서 그걸 시발점으로 상지대학교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실제로도 [[웹툰 작가]]인 [[강풀]] 역시 김찬국 박사 해임에 목숨걸고 반대하던 상지대학교 학생 중 한 명이었고 김찬국 박사를 해임시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관련 만평을 그려서 학교 신문과 대자보에 올릴 정도로 피터지게 노력했으나 결국 김찬국 박사는 아무 이유 없이 김문기의 음모로 인해 총장에서 해임되었다. 그리고 김문기는 김찬국을 해임시킨 총장 자리에 스스로 올라 '''이사장 겸 총장'''이라는 황당한 직함을 손에 넣고 말았다. 자세한 사항은 [[위키피디아]]에 있는 [[http://ko.wikipedia.org/wiki/%EC%83%81%EC%A7%80%EB%8C%80%ED%95%99%EA%B5%90|내용]]에 나와있는데... 이 항목 역시 구 재단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맹렬한 [[반달]]을 받고 있다. 2014년 1월 16일 대학 정이사 후보로 김 전이사장이 사학분쟁위원회에 긴급상정되었다가 폭풍같이 [[https://www.khan.co.kr/national/education/article/201401162119245|탈락]]되었다. 정이사 후보로 권고되었던 중립적, 객관적 인물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니 당연한 결과. 그런데 2014년 3월 31일 김문기의 둘째 아들인 김길남이 새 이사장으로 선출되었다. 상지대는 김문기 손에 다시 넘어간 셈이 되고 말았다. [[https://www.hani.co.kr/arti/area/area_general/631452.html|관련 기사 링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