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상호확증파괴 (문단 편집) === 치킨 게임 === >"'''[[눈에는 눈]]을 고집한다면 온 세상의 눈이 멀게 될 것입니다'''." >---- >[[마하트마 간디]] 상호확증파괴가 국력 차이가 나는 국가들 간 무력적 균형을 성립시키긴 하지만, 사실 상호확증파괴가 성립되는 조건 역시 절대적인 게 아니라 상대적이므로 발전하는 상대의 수준에 맞추기 위해 아군도 계속해서 핵전력을 늘리는 [[치킨 게임]]이 발생하게 된다. 이 점은 재래식 군비경쟁도 마찬가지이나, 이쪽은 핵무기를 두고 벌어지는 것이기에 치킨 게임이 초래할 위험성이 훨씬 심각하다. 냉전 초기에는 적국의 주요 도시 수십~수백여개를 제압할 정도의 핵 전력만 갖추면 MAD가 성립하여 확실한 핵 억지력을 가질 수 있다고 여겨졌고, 논자에 따라서는 [[핵 만능주의|이 정도의 핵 전력만 갖추고 유지하는 것이 방대한 재래식 전력을 유지하는 것보다 값싸게 평화를 유지하는 방식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대에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마라]][* Robert Strange McNamara, 케네디 대통령 시절 국방장관을 지낸 그는 [[포드(자동차)|포드]] 자동차 사장과 [[세계은행]] 총재도 역임하여 행정학과 경제학에서도 이름이 자주 거론된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군부를 제어하면서 소련과의 우발적 충돌을 회피하기 위해 노력했고, 미친 짓이었던 [[노스우즈 작전]]에도 반대했으며,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다가 존슨 행정부와 사이가 틀어졌다.]가 있다. 그러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아이젠하워]]의 "'''모든''' 핵무기를 '''모든''' 공산주의 국가에 '''동시에''' 퍼붓는다."는 생각에 반대했던 맥나마라조차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유연한 대응 '''그딴 거 없고''' 그냥 '''같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어 아이젠하워 독트린으로 회귀했다. 그나마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너무 많아진 핵무기들로 공멸의 위험을 느낀 미소 양국은 상호 합의 하에 핵무기를 감축하는 등 핵 경쟁의 과열을 막으려고 시도했으나, 핵미사일의 정확도가 향상되면서 다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즉, 적국이 강화된 콘크리트 구조물 지하에 핵미사일을 설치하면 설령 핵미사일 공격이라도 직격 및 지근거리 착탄이 아니면 파괴하기 어려운데 냉전 초기에는 탄도 미사일의 정확도가 낮아서 선제 핵 공격을 가해도 적국의 2차 타격 능력이 자국을 멸망시킬 수준까지 보존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미사일의 정확도가 향상되면서 기습 핵공격으로 적국의 핵전력 대부분을 파괴할 수 있게 되자 잔여 핵전력이 크게 줄어든 상대편은 아군에 제한적인 피해만 줄 수 있는 반면 아군은 여전히 남아있는 핵 전력으로 상대의 도시 등 인구·산업 밀집지대를 타격할 수 있으므로 핵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youtube(jlPEBROvR9w, height=280)]}}}|| 1979년, 미국의 군사 다큐멘터리인 First Strike의 가상 시나리오에서 1970년대 이후 이렇듯 변화된 핵전쟁의 양상을 보여준다. 랜드 연구소가 1979년에 내놓은 가상 시나리오인 First Strike는 이렇게 변화한 핵전쟁 양상을 묘사하고 있는데 "소련의 기습 선제 핵공격으로 인해 미군의 ICBM과 SSBN, 폭격기 전력의 대다수가 격파되고, 미국 대통령은 결국 소련에 항복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철저히 군사적 타겟만을 노렸다고 가정해서 민간인 사망자는 약 800만명이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나마 폭격기를 동원해 무차별적으로 핵폭탄을 투하하는 방식만으로 MAD를 유지하던 1960년대에 비하면 크게 감소한 게 이 정도이다. 따라서 미·소 양국은 단순히 상대 국가를 확증파괴할 정도의 핵전력만 보유하는 것을 넘어서 상대의 핵전력을 초기에 완파할 수 있을 정도의 핵전력 혹은 상대의 기습 핵 공격을 당하고도 상대를 확증파괴하기에 충분한 핵전력이 잔존할 정도의 핵전력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략목표는 당연히 적국의 핵전력에 의해 결정되는 가변적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재귀적인 목표이므로 다시 미·소 양국은 극단적인 핵전력 경쟁으로 치닫기 시작했고, SALT([[전략무기제한협정]])가 이루어질 무렵의 양국은 (전술핵 제외하고) 전략핵만 해도 수백 킬로톤~수 메가톤에 이르는 핵탄두를 서로에게 각각 1~2만발 가량씩 투발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나마 충분한 2차 타격 능력을 보장해주는 SLBM이 MAD의 핵심이 된 이후 무조건 수량만 늘리는 핵 경쟁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타이푼급 잠수함]]과 [[오하이오급 잠수함]] 등 상대방을 멸망시키기 충분한 2차 타격 수단의 확보는 물론이고 레이건 대통령의 [[SDI]]나 그와 맥락을 같이 하는 MD, 상대국의 SSBN을 추적하기 위한 SSN(공격원잠) 개발, 극초음속 무기 개발 경쟁 등 세계를 긴장시키는 한편 관련국들에게는 부담을 지우는 군비 경쟁은 오늘날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