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생활총화 (문단 편집) == 상세 == [[김길선]]의 [[https://www.youtube.com/watch?v=X0sKcEjHrUE|유튜브에 의하면]], [[소련]]의 당원들과 [[콤소몰|청년동맹]]단원들이 월 1회씩 하던 것을 수입했던 것이라고 한다. [[김일성]]이 1946년 [[함경북도]] [[청진시]]로 시찰을 갔는데, 그곳에서 참석한 어느 회의에서 김치구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를 비판하는 것을 보고 사상이 어긋나면 자신의 아버지조차도 비판하는 것에 감명 받아 김치구를 주요 지역에 정치위원으로 파견했다. 한 마디로 [[암행어사]]였다는 것. 그러다가 [[김정일]]이 후계자로 추대되던 [[1974년]]부터 여성연맹, 직능연맹, 소년단 등 모든 조직들이 생활총화를 하도록 강화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초창기엔 '''이틀에 한번'''씩에 유치원생과 주부, 환자, 은퇴한 노인들도 생활총화에 참여하고 해외에 있다 돌아온 사람들도 생활총화를 '보충'해야 했다고 한다. 조직생활 평가 자체는 다른 공산국가들에서도 하던 거라서 크게 이상할 것은 없는데, [[북한]]의 이 제도가 한발짝 더 나간 점은 다른 사람을 의무적으로 비판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사회구조가 철저하게 "감시의 감시"를 통해서 사회통제를 유지한다는 점인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https://m.blog.naver.com/nazirite33/220138178934|탈북자 학교 교사가 말하는 북한의 총화 장면]] 학생들도 생활총화에 참여하도록 되어있는데 학생들끼리 생활총화 시간을 무기로 괴롭힘, 공부를 못하거나 몸이 약한 학급 친구가 표적이 되어 매주 혼나는 경우가 많아 학급 선생이 "아무개는 그만 됐으니 다른 애로 하라"고 할 정도이다. 그리고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매주 하다보니 형식화되어 매주 비판하는 내용이 똑같고, 북한은 입학하면 반과 담임 선생이 졸업할 때까지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계속 유지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 수록 친해져 결국 친구끼리라도 그다지 강도도 높지 않으며 결국엔 서로 "잘못했습니다" 하고, "반성하겠습니다"로 마무리하는게 보통이다. [[고난의 행군]] 이후 이런 현상이 더 심해져 인민학교 코흘리개들까지 파철줍기(고철), 김매기, 고사리캐기, 다리보수, 인분 수거, 별의별 과제와 동원이 많아 학교수업이 개판이 될때가 태반이라, [[가라#s-3|어쩔 때는 총화 기록지만 대충 써놓고 했다고 넘기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직업군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주 1회(보통 [[토요일]]), 월 4회로 진행하며 월말에는 월생활총화, 분기별로 1회, 거기에 상반기 하반기 각각 생활총화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주민통제의 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에 생활총화 참석은 의무적으로 해야 된다. 그래서 아무 이유 없이 불참한 경우 보통 사로청 여맹 규찰대가 집으로 찾아와 끌고 가버리는데다, 불참이 많을 경우 로동단련대로 보내 6개월에서 1년간 [[정치범수용소]] 체험을 해야한다.[* 정치범 수용소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단 몇 개월이라도 가축 이하의 취급을 받으니 살아돌아오면 다행, 기본으로 영양실조를 달고 나오게 된다.] 결국 본인과 가족을 위해 한 주에 한 번씩 조직생활에 강제로 참가하여 주변의 이웃을 고자질해야 된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이렇게 내용만 보면, 마냥 빡빡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대체로 인민반장들이 주민들을 죄다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 내용이 거기서 거기고, 총화에서 비판받는 내용이래야 뻔한데, 서로 비방하는 것도 수위 조절을 적당히 해놓지 않으면 주민들끼리 서로 빈정이 상하거나 진짜로 싸움까지 벌어지는 등 사회생활이 매우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히 설렁설렁하는 경우도 있으며, 일부 동네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주민들끼리 비밀리에 알아서 입을 맞추어가며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이는 분위기가 좋을 때 이야기고, 여차하면 남한 드라마 시청이나 외제 물품 사용, 밀수, 중국과의 연락 등등 오늘날의 북한에서 거의 대부분이 하고 있는 행위나 개인의 사생활[* 특히 불륜 같은 도덕적 흠결은 물론이고, 연애나 가족 챙기기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조국과 수령에 대한 충성보다 개인적 일을 우선시 한다는 이유로. 그 외에 사소한 말 실수도 바로 비판의 대상이 되니 오죽하면 북한 속담 중에 세 치 혀에 한 자 목이 달아난다 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조차도 바로 고발대상이 되기 때문에 위험성은 항상 도사리고 있으며,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다구리를 맞는 생활총화의 집중 대상이 될 때의 정신적 고통은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이러한 생활총화는 [[김일성]] 시대에는 그야말로 철저히 진행되었지만,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의 사회가 파편화, 개인화되면서 많이 형식적으로 변했는데, 그래도 중병에 걸린 사람이 아니면 참석해야 되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이 때문에 [[북한이탈주민]]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한국에 와서 좋은 점' 중 하나가, 바로 이 '''[[https://youtu.be/_jGosKB2rVM|"생활총화를 안 해도 된다!"]]''' 같은 점이라고 한다. 사실, 이게 너무 비생산적이고 보여주기식같은 요식행위이다 보니 자아비판까지는 그냥 대충하면 되지만 상호비판은 그야말로 [[억까|되지도 않는 꼬투리를 잡아서 해야 되고]] 비판이 시원찮으면 또 그걸 가지고 억지스럽게 지적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생활총화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아무리 사소한 단체여도 행해지는데, 어느 북한 이탈 주민은 식당 알바를 하게 된 첫날 일이 끝나고 '''"그런데 로동총화는 어디서 합니까?"''' 라고 물어봤다는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게 단순히 거주지역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학교, 직장 등 소속단체에서 노동총화 등 다른 명목으로도 의무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심지어, 외국에 나가있는 유학생이나 해외 북한식당 등의 경우, 집중적인 감시의 대상이다보니 보위부 간부들이 주도해서 상당히 살벌한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김정은]] 시대에는 주민불만을 수용해서 무작정 비판하는 것보다는 "긍정적인 사례를 보고 배우자"는 추세라고 한다. [[https://www.dailynk.com/%E5%8C%97-%EC%83%9D%ED%99%9C%EC%B4%9D%ED%99%94-%EB%B9%84%ED%8C%90-%EC%95%84%EB%8B%8C-%EA%B8%8D%EC%A0%95%EC%A0%81-%EB%B6%80%EB%B6%84-%EA%B0%95%EC%A1%B0%ED%95%98%EB%9D%BC-%EC%86%8D%EB%82%B4/|北 “생활총화 비판 아닌 긍정적 부분 강조하라”, 속내는?]] 다만, 간부들의 경우엔 얘기가 다른게 조직에서 지적을 많이 받아 사상투쟁 연단에 서면 생사가 오가는 위기로 [[숙청]]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일반주민의 총화와 비교하면 엄격성과 진지함이 투철하다. 출석은 당원인 이상 당연히 하는 것이고 전염병이라도 걸리지 않은 이상 기어서라도 나와야지 말 그대로 인민재판식 사상투쟁을 당하면 몇 주동안 폐인처럼 혼이 나간다고 한다. 여기에 [[김정은]]은 2021년 제6차 세포비서대회, 청년동맹 제10차 대회에서 생활총화를 강화할 것을 주장하였다. 생활총화에 빠지지 말고 무조건 참가하며, 특히 당생활총화에서 "'''자기비판과 호상비판(상호비판), 특히 밑으로부터의 올리비판'''[* 즉, 간부의 비리를 아래에서 고발하라는 것. 겉으로 보기에는 주민들의 불만을 수용하겠다는 말로 보이지만 사실은 내부고발을 통해 간부에 대한 당의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을 강화하여"라는 언급이 있는 것을 보아 극도의 강한 통제를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 [[https://gino.khan.kr/1146|#]]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