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나라 (문단 편집) === 개요 === [[춘추전국시대]]에 존재하던 [[동이|동이족]][* 동이족은 [[중국]] 동쪽에 살던 이민족들을 총칭하는 말로, [[한민족]]도 그 가운데 하나이기는 하나, 당시 [[한반도]]도 하나의 통일된 국가를 형성하지 않고, 각 지역별로 성읍국가나 부족국가들이 난립해 있었으며, [[장쑤성]]의 동이족과는 거리가 멀리 떨어져있었기 때문에 무역이나 일부 인적 교류가 겨우 이루어지는 수준이었다. 물론 공통의 정체성을 가질 일도 없었다. 사실상, 오늘날의 중국 본토에 해당하는 지역의 동이족들은 한반도나 만주의 동이와는 그 뿌리부터 다르다.]의 나라로 지금의 [[장쑤성]] [[쉬저우시]]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국성은 영성(嬴姓)[* [[진(통일왕조)|진(秦)]]의 [[국성]]과 같다.]이었다고 전해진다. 서나라에 대한 이른 언급은 [[주공 단]]이 동쪽으로 원정할 때 '[[서융]]'(徐戎)을 공격했다는 데에서 나온다. 이후 [[서언왕]] 대에 서나라는 매우 강성했다고 하나, 이 기록들이 수백년에서 1,000년 가까이 이후의 기록인데다 서언왕과 동 시기의 주나라 왕이나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 왕에 대한 언급이 기록마다 뒤죽박죽이어서 신빙성이 의심스럽다. 자세한 내용은 서언왕 본문을 참고. 남방의 새로운 강호로 떠오르는 [[오(춘추시대)|오나라]]와 남방의 맹주 초나라 사이에서 결국 성장하지 못하고, 기원전 530년 초나라 [[초영왕|영왕]] 때 초군의 침략을 받아 국력이 완전히 쇠락해버렸고, 기원전 506년, 천하 패권을 노린 오왕 [[합려]]의 명령을 받은 [[손무]]의 공격을 받았을 때, 서나라는 얼마간 버티지만 초나라의 원병이 늦는 바람에 마침내 마지막 왕 장우(章禹)가 부인, 첩들과 함께 오나라 풍습을 갖추고 성문을 열어 항복하였다. 하지만 장우가 오군의 감시가 느슨함을 틈타서 초나라로 도망치는 바람에 이를 계기로 오왕 합려는 초나라 정벌을 명령하게 되었고, 천하 패권을 쥔 대전에서 손무의 전공으로 결국 오나라는 초나라를 크게 대파하며, 역사상 최초로 천하의 강대국 초나라의 수도 영이 오군에 함락되는 굴욕적인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오나라는 천하에서 두 번째로 패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으며 초나라에서 새 삶을 시작한 장우와 그 후손들은 초 [[초위왕|위왕]]이 나중에 오나라를 멸한 월나라까지 정복하면서 옛 서나라 땅이 회복되자, 기원전 306년, 초 [[초회왕|회왕]] 때에 그곳에 가서 옛 서나라를 기리며 성을 서씨로 바꾸고 살게 되어 중국 2천만 서씨와 한국 70만 서씨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모든 서씨의 기원이라기엔 토착계열이 훨씬 많으며 그 중에는 백제 왕성인 부여씨가 개성한 서씨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