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력기원 (문단 편집) === 서력기원 전 === 서력기원이 통용되기 전에는 서구 문화권에서도 해(年)를 표기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병용되었다. 마치 동양에서 임금의 [[연호|재위년을 기준]]으로 연도를 헤아렸듯이, [[유럽]]과 중근동의 고문서들이나 [[금석문]]에서도 로마의 [[황제]]나 [[집정관]], 또는 지역의 권력자가 재임했던 시기를 기준으로 연도를 설명하곤 했다. A지역의 금석문에 'A지역의 로마 총독으로 아무개가 취임한 이듬해'라고 쓰는 식이다. [[기원전]] 1세기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리비우스]]가 쓴 《로마사》 1권 52장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sub Tullo res omnis Albana cum colonis suis in Romanum cesserit imperium. >(로마의 3번째 임금) 툴루스 시절, 식민지를 포함하여 알바나의 모든 것이 로마 지배권에 들어왔다. 2세기 중엽에 쓰였다고 추정하는 초대 교회의 문서 《폴리카르포 순교록》(Martyrium Polycarpi)에서는 [[이즈미르|스미르나]]의 주교 폴리카르포가 순교한 해를 "트랄레스(Tralles)[* 오늘날 [[튀르키예]]의 [[아이든]](Aydın)시이다.]의 필립푸스(Philippus)가 대사제이고, 스타티우스 콰드라투스(Statius Quadratus)가 전 집정관이었을 때"라고 설명했다.[* 《폴리카르포 순교록》은 폴리카르포가 언제 [[순교]]했는지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애썼지만, 그런데도 순교년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의문이 있다. 대부분 학자들은 순교록의 기록에 근거하여 155–160년쯤으로 본다.] 성서에서도 이런 식으로 연대를 표시했다. 이렇게 권력자의 재임시기로 연대를 표기하는 것은 유럽이나 중근동에서 가장 널리 쓰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방식은 해당 권력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어느 때인지 금방 감이 오겠지만, 모르는 사람이라면 언제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고대 로마]]가 건국됐다고 전해지는 기원전 753년을 원년으로 삼아 연도를 헤아리는 방법도 있었다. [[라틴어]]로는 'Ab Urbe Condita(로마 도시가 세워진 이래)'라고 썼는데 약칭하여 'AUC'라 한다.[* 로마 기원은 기원전 1세기 로마 학자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Marcus Terentius Varro)가 [[로마 공화국|로마 공화정]]이 수립된 첫 해를 가리켜 ab urbe condita CCXLV(로마기원 245년, 기원전 509년)라고 쓴 데서 유래했다. Anno Urbis conditae(도시의 건설의 해), 또는 Anno Urbis(도시의 해)라고 쓰기도 하였다. 약칭은 AUC, 또는 AU.]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로마에게 정복된 해를 기준으로 연도를 헤아리기도 하였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올림피아 제전]]을 [[올림피아드|연도표기에 사용]]하기도 했다. [[로마 제국]]의 동남쪽, (오늘날 이집트에 있는) [[알렉산드리아(이집트)|알렉산드리아]]의 교회는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 재위)가 즉위한 해(284)를 원년으로 삼은 순교자기원(Anno Martyrum)을 4세기부터 사용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이집트 [[콥트 교회]]가 순교자기원을 사용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 황제로 재위하던 시절에 마지막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기독교 박해|대규모 그리스도교 박해]]를 행했기 때문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직접 통치한 이집트에서 박해가 강력해서 순교자들이 많이 나왔던 점도[*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사두정치]] 체제를 도입해서 제국을 분할통치했다. 여기에 대해선 [[사두정치]] 항목 참조.] 알렉산드리아 교회가 순교자기원을 만들고 사용한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순교자기원은 알렉산드리아 등 동로마에 있는 교회 일부에서 사용했을 뿐이었고, 서로마 교회에서는 결코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라틴어로 인딕티오(Indictio)라는 것도 연대를 표기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쓰였다. 인딕티오는 본래 '포고령' 또는 '공고'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로마 제국에서 15년마다 한 번씩 토지세 계산 목적으로 대규모 재산평가를 하라고 황제의 명으로 포고령을 내리던 것을 가리킨다. 312년 [[콘스탄티누스 1세|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재산평가 포고령 주기로 연대를 표기하는 방법을 도입했는데, 로마의 일반 역법과는 달리 시작일을 9월 1일로 잡았다.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회계연도' 개념이었다. 예를 들어서 secundus annus indictionis(포고령의 두 번째 해)라고 하면 포고령이 내리는 해의 이듬해를 가리켰다. 포고령이 내리는 당년은 primus annus indictionis(포고령의 첫 번째 해)라고 표현했다. 나중에는 인딕티오가 15년 주기 자체를 가리키는 단어처럼 쓰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주기의 두 번째 해를 secunda indictio(두 번째 포고령)이라고 표현하는 식이었다. 인딕티오 방식은 동양권에서 [[60갑자]]만으로 연도를 표기하는 것과 비슷해서 --4인딕티오 하면 [[회갑]]-- '몇 번째 포고령 주기'인지는 무시하였다. 그래서 서양의 고문서에서 인딕티오 방식으로 연도를 표기했다면, 그것이 정확히 어느 해를 뜻하는지는 따로 계산해야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