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면(춘천) (문단 편집) == 박사마을 == '''박사마을'''이라고도 불리는데, 실제로 작은 시골마을임에도 [[박사]] 학위 소지자를 많이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에도 같은 이유로 인해 생긴 박사마을이 있다.] 실제 그 부근 초등학교에 출신 유명인사들이 다녀가는 모습이 지역지에 소개되기도 했으며 주말이면 박사마을에 있는 모텔에 [[신혼|신혼부부]]가 일부러 첫날밤을 보내는 일도 있다고 한다.(...) 박사마을 출신 중에 대표적인 인물로 [[한승수]] 전 [[국무총리]]가 있다. 그러다 보니 서면에서는 자식 자랑하면 팔불출이라고 잘 안한다. 왜냐면 10가구당 박사 1명, 14.4가구당 교장 1명, 18가구당 5급 사무관 이상 1명이기 때문이다. 주민이 겨우 4000명 밖에 안되는 촌 동네에 반세기동안 무려 161명의 박사(명예박사 4명 포함)를 배출했다. 지역적으로 완벽한 배산임수 지형이라 풍수적으로 뛰어나니 어쩌니 하지만 그보다는 억척스럽게 사는 부모와 이를 보고 자란 자식들이 원인으로 꼽힌다. 한때는 근화동의 번개시장에 채소전을 펴는 아낙네가 거의 서면 사람들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래서 춘천에는 "딸을 낳거든 광주리 하나만 장만해 주면 되고, 서면으로 시집 보내려면 광주리와 호미 한 개씩 마련해 주면 된다." 또는 "시내 어귀에서 신발이 흙먼지투성이인 사람은 영락없는 서면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심지어 서면에서 번개시장까지 그냥 가는게 아니라 나룻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강원도는 21세기가 될때까지 유일하게 도청소재지(춘천)에 고속도로가 안지나가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자식인 어린 학생들도 학교에 가기 위해 새벽의 첫배를 타고 춘천시내로 들어가야 했는데, 학생들은 한밤중에 배를 기다리며 강건너 환하게 보이는 시가지를 동경했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박사들도 서면 23개리 중에 배터 부근인 금산, 서상, 방동리 등에 집중되어 있다. 이 억척스러운 서면 아낙네들이 첫배를 타러 갔다가 일어난 끔찍한 사건이 바로 1970년 '중도 나룻배 전복 사건'. 서면 뿐만이 아니라 춘천 역사상 최악의 사고였다. 이 마을의 1호 박사는 1963년의 송병덕 의학박사(미국 로마린 대학)이며 2,3호가 바로 저 유명한 [[한승수]] 총리. 그리고 한총리의 춘고 동창으로 EBS 사장 박홍수 박사(박사 7호)와 경희대한방병원장 송병기 박사(박사 9호)가 있다. 그외 한기수 연세대 원주캠퍼스 부총장, [[정광수]] 산림청장, 류갑희 농촌진흥청 차장 등등등 도 있다. 하도 박사들이 쏟아 지자 마을 사람들은 축하 현수막을 걸고 축자 잔치를 벌여 주었으며, 일본 NHK등 국내외 언론에서 대서 특필 하였다. 그리고 박사들에겐 학위증서 번호 외에 마을선양탑관리위원회가 학위 취득순서에 따라 번호를 매겨준다. 1999년에는 박사마을선양탑이 세워졌고, 2005년에는 탑 뒤쪽에 8폭 병풍 모습의 비석에에 취득순서대로 박사들의 이름 기재 + 출신 리(...)를 새겨 놓았다. 미래를 위해 5폭 반 분량이 현재 비워져 있는데 이속도로 가다간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칸이 부족할 지경. 박사마을과 관련해 모 병원 의사가 "환자 주소가 박사마을이니 보호자는 박사가 오려나?"라고 간호사와 농담했다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정말로 미국에서 박사가 와서]] 깜놀했다는 일화도 있다. ~~10가구 중 한곳은 박사가 있습니다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