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산회의 (문단 편집) === 2전대회 === 이렇게 개최된 국민당의 제2차 전국대표대회였는데 2전대회의 대회참가자를 심사하는 대표자격 심사위원회는 린썬이 서산회의로 가버리고 등택여가 사직해버리면서 임조함, 마오쩌둥, 담평산 등 공산당이 장악하고 있었다. 여기에 천옌녠, 저우언라이 등이 서산회의파를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중간파 비중을 줄이고 좌파를 중심으로 대표를 선출하며 공산당원이 삼분의 일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섬에 따라 256명의 대표 중 공산당이 90명을 차지하는 등 규모에 맞지 않는 비중을 차지하며 2전대회를 장악하였다. 다만 보이틴스키가 [[다이지타오]], [[쑨커]], [[예추장]] 등의 중간파를 인정하자고 주장하면서 중공 중앙을 말렸고 이에 [[천두슈]]는 쑨커, 예추장, 사오위안충과 담판하여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을 장악할 생각도,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공산당원을 늘릴 생각도 없으니 2전 대회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했다. 장제스는 [[쑨커]]와 협의해 서산회의에 관한 의제를 3전대회까지 보류하고 다른 기회에 다시 결정하자고 하는 등 온건론을 주장했다. >"여러분은 지금 여기에 제2차 건국대회를 열고 있지만, 우리들 중국 국민당은 총리가 남겨준 것이다. 우리는 총리의 마음을 우리 당의 마음으로 삼고, 총리의 뜻을 우리의 뜻으로 삼아야 한다. 제2차 전국대표대회의 결과가 천상의 총리를 나날이 탄식케 하는 것과 같은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 >-장제스의 발언. 이는 서산회의에 관한 의제가 공식적으로 상정될 시에 당의 분열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이를 것을 우려한 주장이었다. 하지만 대회비서장 오옥장과 조직부장 담평산 등의 주도로 서산회의탄핵안이 공식 상정되었고 1월 13일 오후회의에서 논의되었다. 장제스로부터 온건론을 주문받은 왕징웨이는 자신의 의견이 황포군관학교와 제1군의 지지를 받는 의견임을 내세우며 서산회의파에 대한 관대한 처분을 요청했다. 하지만 공산당원들은 엄중한 처벌을 강하게 요구하며 격론이 벌어졌다. 표결에 따라 온건론이 채택, 기존의 탄핵안에서 언급된 강경론에서 크게 후퇴한 서산회의 탄핵결의안이 1월 16일 정식으로 통과되었다. 이 결의안은 [[쩌우루]], [[셰츠]] 두사람을 국민당에서 영원히 제적하고 [[린썬]], [[장쥐]], [[쥐정]], [[샤오위안충]] 등에겐 사면으로 반성을 촉구하고 2개월 내에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적한다는 강경한 것이었다. 이후 열린 전국대표대회에서 중집위원, 감찰위원 및 후보위원에서 공산당원들이 대거 약진, 9명의 중집위원과 6명의 후보위원, 2인의 감찰위원, 1인의 후보감찰위원을 배출했다. 이후 조직부장 겸 비서처 비서에 담평산, 농민부장 겸 비서처 비서에 임조함, 선전부장에 마오쩌둥이 앉았다.그리고 공인부장은 후한민이었으나 숙청당한 상태라 공인부 비서 풍국파가 장악했고 부녀부장 [[쑹칭링]]이 사퇴하여 부녀비서 덩잉차오가 장악했다. 서산회의는 이러한 이전대회의 대응을 예견하여 반응을 보이진 않았으나 쩌우루, 셰츠 등에게만 국한된 강경한 처벌이 서산회의파의 분열을 야기할까봐 우려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