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산회의 (문단 편집) === [[돤치루이]]의 독재 === 1924년 제2차 직봉전쟁의 결과로 [[펑위샹]], [[장쭤린]], [[돤치루이]] 3인이 [[우페이푸]]와 [[차오쿤]]의 정권을 몰아내고 권좌에 오르게 되었다. 남방에서 북벌을 준비하던 쑨원은 북상선언을 발표, 사실상 [[군벌]] 세력으로 조각나있던 중국의 통일과 건설을 위해 국민회의 소집을 제안하는 한편 제국주의 세력을 중국에서 축출할 것을 결의했다. 당시 베이징에선 돤치루이가 중화민국 임시집정에 올라 쑨원이 주장한 불평등조약 철폐를 무시하고 선후회의조례 13조를 발표하여 외국과의 조약을 존중할 것을 천명했다. 베이징에 도착한 쑨원은 입경선언을 하고 돤치루이와 협상하려 했으나 돤치루이는 쑨원을 철저히 무시하며 [[선후회의]]에 참여하겠단 쑨원의 제안도 묵살했다. 이에 국민당 중집위가 독자적 국민회의조직안을 제안함으로 북방 군벌들과 국민당의 합작은 결렬되었다. 여기에 돤치루이는 임시참의원을 설치, 자신의 임시집정 자리를 계속 유지하려고 함으로 독재를 꾀했고 국내외적인 반발에 부딪혔다. 서산회의파를 결성하게 되는 린썬과 쩌우루 등은 1925년 11월 11일 베이징의 대학 교수들과 연석회의를 가지고 돤치루이를 비판했다. 또한 돤치루이의 임시집정정부에 대항하는 반정부시위와 돤치루이 하야를 기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