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석구 (문단 편집) === 부림사건 이후 [[전향]] === [[부림사건]] 이후 법원을 떠나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운동권 인사들을 주로 변호하는 등의 진보적인 활동을 보였다. 일례로, [[1987년]] 대구지방변호사회 소속변호사들이 [[4.13 호헌조치]] 규탄 성명을 낼 때 참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젊은 시절에는 [[1992년]] 당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1991년)|민주당]]의 영입 대상으로 고려될 정도[* 이때 민주당으로 영입이 성사되었으면 훗날 울산광역시장이 되는 [[송철호]] 변호사와 정계입문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로 진보성향을 보였으며, 놀랍게도 [[2001년]]엔 [[문재인]] 당시 변호사와 [[천정배]] 당시 민주당 의원과 함께 [[법치주의]]와 개혁을 논지로 한 토론회를 여는 모습도 보였다.[[http://bbs.ruliweb.com/best/board/300148/read/31552864|#]] 그러나 점차 운동권에 등을 돌리고 보수화되었으며 2000년대 이후에는 전형적인 극우성향의 행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서석구 변호사는 2014년 2월 시사인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전향 이유를 당시 운동권의 친북성향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서석구에 따르면 시국사범에 대한 변론이 끝나면 법정 밖에 있는 운동권 인사들이 수고했다고 자신에게 선물을 줬는데, 대부분 [[김일성]] 주체사상 관련 책이나 루이제 린저의 '북한방문기', 북한의 소설가 리기영의 소설 '두만강' 등 북한을 찬양고무하는 책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석구의 종교인 가톨릭은 분단 및 6.25 시기에 북한의 박해를 겪어서 개신교에 못지않게 북한과 악연이 있는 종교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극우로 회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에 속한다.그래도 극우로 전향한 뉴라이트를 보면 아주 드문건 아닌것 같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