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세원 (문단 편집) === 개그맨 경력 === [[1979년]] [[동양방송|TBC]] 라디오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데뷔했으나 대부분의 활동은 MBC에서 했으며 MBC에서 활동하는 동안 [[영11]], [[청춘행진곡]], [[일요일 밤의 대행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당시의 코미디 프로그램은 슬랩스틱이나 바보 연기 등이 주된 재료였지만, [[전유성]]이나 서세원 같은 희극인들은 이른바 몸보다는 말로 웃음을 유발하던 사람들로, 전유성이 진지한 톤에서 황당한 발언으로 웃기는 스타일이었다면, 서세원은 한국인의 어법이나 억양을 교묘하게 비트는 방식으로 만들어낸 독특한 톤을 이용해 웃기는 희극인이었다. 당시 서세원의 초대박 인기 콩트는 바로 청춘만만세에서 나왔던 '''청춘보감'''이라는 코너로, 이 콩트에서 서세원 최고의 유행어인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셔'''[* 콩트 속에서 악덕 상인이나 [[사기꾼]] 역할의 서생원이란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기에 마지막엔 징벌을 당한다. 이때 "한 번만 용서해 주신다면 이 어린 양들을 이끌고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셔 뗏목을 타다가 뒤집어져셔 모터보트 갈아타는데 모터보트 기름 떨어져셔 그냥 막 헤엄치면셔셔셔 셔셔러셔셔셔'''" 처음엔 [[목사]] 말투로 하다가 회를 거듭할 수록 바리에이션으로 노래를 부른다든지, "Over the mountain cross the river cross the sea"의 식으로 막영어로 개사한다든지 했다.][* [[박명수]]가 1990년대 신인 때 [[이승철]] 흉내만 내는 게 식상하다는 평을 듣자, 서세원을 닮은 걸로 한번 주목받아 보려고 잠깐 이 유행어로 성대모사 개그를 썼던 적이 있었다. 물론 결국 다시 이승철 흉내로 돌아왔지만, 그 이후에도 종종 써서 현재에 이르러서도 한번씩 방송에서 (분장 등을 했을 때 민망하면) 산넘고 물건너 바다건너셔를 할 때가 있다. [[무한도전]] 시절에도 [[유재석]]이 분장한 박명수에게 '서세원 선배님 닮았다'고 하면 입을 내밀고, '안녕하십니까아 서세원입니다아아'로 시작해서 자동옵션으로 이 유행어를 몇 번 했다. 사실 개그맨 [[김영철(코미디언)|김영철]]도 신인 시절에 [[윤복희]], [[하춘화]], [[보아]] 같은 여자 연예인들 뿐만 아니라 얼굴이 닮았다는 이유로 서세원 성대모사도 1년간 했었고, 심지어 토크박스에 나가서도 해서 서세원이 "(나를) 닮은 게 맞는거 같긴 하지만 왠지 니(김영철)가 (내 성대모사) 하는게 싫어"라고 말했을 만큼 잘 표현했었는데, 이내 서세원이 여러 사건에 연루되고 매장당한 후로는 안 하고 있다.]가 탄생했다. 또한 서세원은 인기 연예인을 초빙해서 개그를 하는 <서세원의 스타데이트>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훗날 대한민국 [[토크쇼]]의 교두보를 마련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TV 토크쇼는 초기에는 진지한 대담에 가까웠는데 1979년에 방영된 '화요일에 만납시다', [[1982년]]부터 [[1992년]]까지 방영된 장수 프로그램 '11시에 만납시다' 가 대표적이다. 이것이 코미디언이 진행하는 농담 섞인 형태로 변한 것으로 대표되는 것은 [[1989년]] 3월부터 방송된 [[한국계 미국인]] 코미디언 '[[쟈니 윤]] 쇼' 였는데 시기적으로 서세원의 스타데이트와 유사하다.] 서세원은 MC로서도 유능했다. 특히, 훗날의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과 같은 개그맨 출신 MC들이 단순히 진행자 역할에 그치지 않고 프로그램 전체를 기획하고 조율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준 명 MC였다. [[주병진]]이 본격적으로 뜨기 전 당대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를 끌고 있던 예능 프로그램도 서세원이 진행하는 [[영11]]이었다. 이러한 활약을 통해 서세원은 1980년대 중반까지 동시대의 라이벌들인 [[김형곤]], [[주병진]]보다[* 데뷔가 비슷했던 대신 서세원보다는 동생들이다.] '''인기 면에서 언제나 우위에 있었다.''' 다만 1980년대 중반부터는 상황이 달라지는데 [[김형곤]]이 유머 일번지의 레전드 코너들인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등의 시사풍자 콩트를 통해 전성기 [[심형래]]의 대항마 수준으로 올라섰고 [[주병진]]은 1988년, 콩트 스케치쇼였던 '일요일 밤의 대행진'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버라이어티 예능으로 포맷을 바꿨을 때 메인 MC 자리를 맡으며 개그맨 출신의 MC로서 정상급으로 군림하게 된다. 물론 [[1980년대]] 중반부터의 압도적인 원톱 개그맨은 후배인 [[심형래]]였다. 그렇지만 [[심형래]]의 전성기가 오기 직전까지 정상급 코미디언들 중에서도 서세원의 인기가 최고였던 것은 틀림없다. 1980년대 후반, KBS 2TV에서 [[최양락]]이 네로 25시로 너무나 잘 나가자 MBC에서는 최양락의 대항마로 서세원을 다시 내세웠다.서세원은 네로 25시의 기믹을 '''살짝 베껴서''' 지하실의 멜로디라는 코너로 인기를 끌었다. 여기서는 당시 반국가단체로 간주되었던 전대협의 명칭을 패러디한 전'''도'''협(전국도둑협회)의 회장으로 등장해서 네로 25시에서 최양락이 보여준 개그와 비슷한 기믹의 개그를 보여줬다. 당시 코미디언 중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던 사람은 단연 [[최양락]]이었고 서세원이 그의 유일한 라이벌이었다. KBS는 콩트 중심의 상황극을 MBC는 유행어를 민다는 방향성을 보였었다. [[1990년대]] SBS의 개국과 맞물려 중견급 코미디언들의 방송사 대이동을 거친 끝에 MBC에서 활동하던 서세원은 KBS로 활동 무대를 옮겼고 심형래, [[임하룡]] 등이 떠난 KBS 코미디계에서 리더 격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서세원은 [[청춘행진곡]]에서 <서세원의 스타 데이트>를 진행한 경험을 밑바탕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토크쇼 진행자로 변신, [[2000년대]] 초반까지 KBS 2TV의 간판 프로그램인 '[[서세원쇼]]'로 흥행하게 된다. 가장 유명했던 코너는 '토크박스'로 출연 연예인들이 서로 센 이야기들을 해서 서세원이 등수를 매기는 방식. 해당 프로그램은 IMF로 우울했던 한국인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준 예능 프로그램으로 매우 큰 화제를 일으켰고, 당시 웃기는 가수라는 컨셉으로 등장한 중고 신인 그룹 [[컨츄리 꼬꼬]]의 입담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고 인기없는 중고 신인 [[유재석]]을 재발굴하여 인기 연예인으로 성장시키는 데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했다. [* 그도 그럴 것이 그 전까지의 유재석은 전통적인 꽁트 일변도의 코미디 프로그램에 조역이나 단역으로 출연하거나 별명인 메뚜기 탈을 쓰고 연예 프로그램 리포터 역할을 하는 정도였기에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에 맞춰 입담을 선사하는 그의 장기를 발휘할 공간이 사실상 전무했는데, 토크박스에서 서세원이 깔아준 판에서 유재석은 자신의 학생 시절 이야기를 걸출한 입담으로 풀어내며 매사에 소심하고 조심스러워 하는 표정과 상반되는 이야기 속 스토리가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웃음을 선사했다.] 다만, 이 프로그램의 컨셉[* 주사위를 던져서 토크 주제를 정하는 것]은 한국 방송의 고질적인 병폐인 [[일본 방송]] 베끼기다. 일본의 장수 인기 토크 프로그램 [[라이온(기업)|라이온]]의 [[http://ja.wikipedia.org/wiki/%E3%83%A9%E3%82%A4%E3%82%AA%E3%83%B3%E3%81%AE%E3%81%94%E3%81%8D%E3%81%92%E3%82%93%E3%82%88%E3%81%86|고키겡요(ライオンのごきげんよう, 1991년부터 방송)]]의 코너 '[[http://www.youtube.com/watch?v=6cwPZFAmAnE|주사위 토크]]'를 그대로 따라했다. [[http://jamja.tistory.com/686|#]] 그 외에도 서세원은 [[코미디 세상만사]],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ogGic18HWgpfUAmXZ9tkAAn3ItUnx4QU|공포체험 돌아보지마]]'[* 여성 연예인들이 출연해서 한밤 중에 서세원과 같이 밖에서 산책을 하면서 여러 곳에 설치된 귀신 및 장치에 놀라 비명을 지르던 코너. 수많은 여성 연예인들이 해당 코너로 인지도를 높였다.], [[시사터치 코미디파일]] 등의 KBS 코미디 프로그램과 라디오 '서세원의 가요산책'[* [[KBS 2FM]]에서 오후 2시 시간대에 송출된 라디오 프로그램. "오늘은 왠지"라는 유행어를 만든 인기 방송으로 동시간대 청취율 1위를 달성하며 각종 라디오 DJ로 이름을 널리 알린 [[김기덕(DJ)|김기덕]] 시절의 [[두시의 데이트]]를 청취율로 이겼다. 이 때문에 김기덕이 하차하고 6개월 전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한 이문세로 교체했다. 지방 음악FM에서도 릴레이되었다. 이런 인기를 얻어 1997년 가을 개편 때부터는 '서세원의 가요산책'이 무려 3시간 동안 방송됐고 당시 오랫동안 진행하던 '[[홍서범]]의 뮤직쇼'는 1시간으로 축소됐다.],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 이건 일본의 거물 개그맨 [[아카시야 산마]]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포맷을 표절한 것이었다. 서세원쇼에서 뻐드렁니를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는 것, 웃을 때 바닥을 뒹굴며 과하게 리액션을 취하는 것 등도 산마가 원조. 다만 1998년 가을 개편 이전에 와이드쇼로 진행됐을 때는 오리지널 코너가 있었다.]의 진행자로 활동하며 방송계에서 폭발적인 위세를 누렸다. 서세원은 데뷔 20여년이 지난 1990년대 후반까지 TV 프로그램과 라디오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두 분야 모두 시청률이나 청취율을 최상위권에 올려놓으며 [[김국진]], [[이경규]] 등의 탑레벨 개그맨 다음가는 1군~1.5군 정도의 위치를 꾸준히 지키고 있었다. 게다가 그 둘보다 선배였고[* 사실 한참 후배인 김국진은 둘째치고, 동세대 후배인 이경규만 해도 서세원의 전성기인 1980년대에는 단역 개그맨에 불과했다. 당시 원탑 발라드 가수였던 [[이문세]]가 그나마 이경규의 재능을 좋게 봐서 자기가 진행하는 라디오에서 막간 유머를 장기간 하게 밀어줬던 게 그나마 어려운 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줬던 정도. 이경규는 개그맨으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무렵에도 서세원이 꽂아준 코너에서 주요 조연을 하기도 했었다. 대표적인 역할로는 "다찡 유찡", "씽씽 왕왕왕 아나 꽁꽁 꽁꽁꽁"이라는 유행어 노래(먼 훗날 유재석이 TV애서 자주 이 개그를 따라하기도 했었다.)로 유명했던 서세원의 가짜 진시황 코너에서 신하 역을 맡은 것이 있다.] 이경규의 일밤 전성기 시절에도 서세원 역시 본인이 진행하는 프로그램들로 나름 큰 인기를 가지고 있었으니 [[이주일]]이 암으로 사망하고 [[심형래]]가 영화 제작 문제로 빠진 21세기에, 후술된 막장 짓거리들을 안 했더라면 서세원은 현재까지도 이경규보다 예능계에서 더 압도적인 권위를 가졌을 것이다. 즉, 서세원은 신인 때부터 인기를 끄는 스타로 시작하여 정통 콩트 코미디가 유행할 때는 콩트로, 연예오락(지금의 예능)이 유행할 때는 MC로, 토크쇼가 유행했을 때는 토크쇼 진행자로 시대흐름이 바뀌어 오는 것에 따라 발맞추어 모두 성공했던 최강 커리어의 희극인이었다. 그야말로 전성기가 아닌 적이 없을 정도. 콩트, 토크쇼, 교양성 예능, 정통 예능까지 코미디언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는 모두 진출해서 성공한 [[악마의 재능]]을 가진 자였다. 서세원은 콩트 프로그램을 하면 유행어를 여러 개 만들고, 예능성 진행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서 히트치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마이더스의 손처럼 손대기만 하면 방송을 성공시키는 개그맨이었고 솔직히 과장 없이 말해도 연기력, 아이디어 응용 능력, 진행 능력, 기획 능력, 구성 능력 등 뭘로 봐도 연예인 및 방송인으로서의 능력치는 깔 게 없다. 사생활과 인간성이 비정상인 범죄 전과자라서 그렇지 그것만 정상이었으면 계속 경력을 이어가 지금 이 시대에도 노년 개그맨이나 진행자로 새로운 획을 그었을 수도 있다고 평가받는 특출난 인물이었으며, 엄청난 연예인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