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욱 (문단 편집) == 여담 == * [[파일:서욱사과.jpg]] 국방부 장관 취임 후 12개월 간 7번 대국민 사과를 했다. 북한 귀순자 경계 실패(2월 17일), 부실 급식·과잉방역 논란(4월 28일), 공군 여중사 사망 사건(6월 9일과 10일, 7월 7일), 청해부대 34진 집단감염 사태(20일), 해군 여중사 사망 사건(8월 14일) 대국민 사과. * 아주 엄격한 지휘 방식으로 유명한 임관 동기인 남영신 장군이나 상벌이 확실한 김운용 장군, 안영호 장군과 달리 제복군인 시절이던 사단장이나 연대장 때 전역자들의 평가가 어떠했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즉, 예하부대에 재량권을 최대한 부여하되 자신이 감찰을 통해 필요시에는 끊임없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부대를 지휘하는 타입으로 일반 보병 병과 장군이라기엔 꽤나 특이한 잠복지휘+암약형 스타일로 여겨진다. 아래 일화들을 종합하면 덕장과 지장 스타일이 합쳐진 스타일. 이러한 점을 보면 [[성일환]] 전 공군참모총장과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평. * 그와 별개로 군단장 시절에는 부조리 방지를 위해 일선 부대에 대한 기본적인 감찰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였던 바 있다. 예하 [[제9보병사단]] 백마부대 직할대에서 내부 병영 부조리와 간부들의 무관심이 탓에 그간 큰 문제가 있었음에도 자정능력을 상실해 장병들의 고충이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어떤 용감한 병사가 인트라넷 '군단장과의 대화'에 직접 제보를 해버렸다.[* 이게 왜 엄청난 거냐면, 육군 병사들은 인트라넷으로 군단장과의 대화에 직접 제보할 수가 없다. 보통 그 옆에 참모장과의 대화나 아니면 주임원사의 대화는 작성이 가능하나 군단장과의 대화칸은 인트라넷 아이디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것이 없는 병사는 간부의 협조를 얻든지 몰래 하든지 해서 계정을 빌려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당직부사관|당직]] 좀 서보거나 인사, 행정계원이면 간부들 아이디를 다 알고 있다.] 보통은 보안상 이유란 구실로 거부되거나 일반적 용도는 물론 '''가해자들은 기겁할 정도로 올라가기 싫어하는 끔찍한 부조리 보고라면''' 백이면 백 막혀서 더 심한 부조리를 당해 심각할 경우 의문사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몇 달간 진척조차도 없이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서욱 재직 시절 며칠 만에 두꺼운 보고서(...)가 올라오고 한방에 해결된 사례가 있다.''' 군단장 재임 당시 [[제39보병사단]]장 [[문병호]] 소장과 [[박찬주 대장 갑질 사건]]이 터졌는데, 사건 직후 공관 옆에 함께 기거하던 조리병과 운전병을 바로 올려 보냈다. 특정 요일 특정 시간에는 간부 목욕탕을 용사들에게 개방하여 사우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시간에 출입하는 간부는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하는 등 병들의 복지에도 관심이 깊었다.[* 어찌보면 이러한 면 때문에 한때 제복군인이던 때에 [[장준규]], [[장경석]], [[임호영]]이 덕망을 보이던 시절과 꽤나 비슷하면서도 그들의 상위호환적인 면모가 보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대북 대응태세와 실로 허술한 대북관을 제외하면 심각한 국내 정치사고를 아직 팡팡 터뜨리진 않았기 때문.] * 군단장 이임 후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이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JSA 북한군 귀순 사건]]이 터졌는데, [[삼척항 목선 귀순 사건]]과는 다르게 특별한 은폐 의혹이라든지 작전상, 교리상, 법리상 특별한 문제는 없었고 사건 수습을 슬기롭게 하여 위기관리 대처능력을 보여주었다. 비록 군사지역에서 발생한 응급환자를 군 병원 놔두고 민간병원으로 후송한 것이나, 북한군은 우리 측 지역에 총을 갈기는데 우리는 가만히 맞고만 있었던 것, 대대장이 직접 구출하러 갔다는 미담의 진위 공방 등이 있었지만 말이다.[* 이건 잘못부터가 아니다. 구출 주체가 군이라 군 병원 후송이 가능해도 군 병원의 열악한 인프라(...)와 귀순병의 총상이 워낙 고급 숙련의가 아니면 소생불가 수준이었기에 결국 국내 중증외상 분야 최고 권위자인 [[이국종]] 교수에게 집도를 맡겼다. 당장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살린 이가 이 교수고, 다른 곳도 아닌 미국과 UN의 구역인 JSA에서 총상자 귀순병이 치료 없이 전사했으면 '''나락급 국제 망신 확정이었다.''' 응사하지 않은 건 답답해도 냉철히 판단한 것. 또 북측은 [[소총]] 반입 금지 국제규정도 어겼는데, 그런 반국가단체 반군들 상대로 대대장이 부사관들과 동행해 직접 귀순병을 구하러 가서 일단 부사관 2명이 직접 몸으로 구출했고 대대장도 상당히 앞쪽까지 간 걸 놓고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에서 전사한 오영안 준장(당시 대령, 기무대장)을 예로 들며 비판하는데 오 준장은 결정적 궐석이란 결과를 남겼으나 애시당초 병과 담당부터가 행정사무, 정책 관련인 대공(対共) 보안수사였고 저 대대장은 고급제대 지휘관임을 감안해도 '''전투병과인 보병'''이다. 비교를 할 거면 [[리처드 윈터스]]를 갖다 붙였어야 했다(...). 결론은 군에다 책임 물으랴 공방전 펼칠 게 아니라 극찬할 일이다.][* [[삼척항 목선 귀순 사건]]으로 군단장이 해임당하고 지휘계통이 줄줄이 징계를 받은 것과 달리, 서욱 장군은 작전본부장 직후 참모총장으로 영전하고 부사관 두 명과 대대장, [[이국종]] 교수는 청와대 초청에 표창까지 받았으며, 이 교수는 후에 명예 [[대한민국 해군]] 중령으로 진급까지 했다. 군을 통솔하는 국가 입장에서 봤을 때에도 대처를 잘해주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 군단장 역임 시 예하부대(특히 전방 소부대) 현장지도를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재미있는 점은 '평상시' 근무상태를 보는 것을 좋아해 무통보로 끽해야 한 시간 전쯤 언질을 주니 해당 부대는 발길에 불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전방 소부대 입장에선 [[연대장]](보병 병과 기준 現 [[여단장]])만 떠도 상전인 판에 '''장성들도 못 얕보는 장성인 군단장의 방문은 온 부대가 엎어지도록 최고 수준의 의전을 해야 하기에''' 정보가 없어 비서실로 불나게 전화 거는 경우가 많았다. 1군단장 취임 이후엔 불과 3달 만에 자신이 대대장 했던 전방 철책부대를 무려 5번이나 다녀왔다고. 이건 사단장 당시에도 마찬가지라 [[제25보병사단]]장으로 부임하자마자 불시에 부대를 방문한 사례도 있었다. [[전속부관]]과 함께 '''깜깜한 새벽에''' 본부대 시찰을 불시에 나갔는데, 여느 본부대가 그렇듯 평소였다면 불침번은 스멀스멀에 당직사관도 사실상 눈앞에서 꿀잠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그날따라 '''군기가 훌륭한 용사들이 근무를 서고 [[당직사관]]도 기적적으로 깨어있어''' "본부대는 근무기강이 잘 서있군." 하고 격려하고 떠나간 일화도 있다.[* 당직사관 담당이 잦았던 원사(진)의 감각도 남다르단 평이 많다. 괜히 원사를 단 것이 아닌데, 하루만 늦게 시찰을 했어도 경계태세와 기강이 해이하다며 대참사가 벌어졌을 일(...). --만약 너네 불침번 서다가 군단장님이 오셨어. 너, 어떻게 해야해? (경례를 합니다!) 잘했어. 그다음은 뭘 해야해? (무엇을 도와드립니까?)-- ] [[유자차]]를 좋아한다는 정보가 예하부대 사이에서도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현장지도를 가는 곳마다 유자차를 내와서 하루에 네댓 번도 유자차를 마셨단(...) 일화가 있기도 했다. * [[워커홀릭]]이다. 어느 실무자들보다도 본청에 제일 먼저 출근했으며 매우 늦게까지 일했다. 너무 일에만 열중하니 휘하 참모가 총대 메고 "일도 중요하시지만 참모들과 대화와 소통도 하고 축구라도 한 게임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건의한 적도 있었다. 사실 바쁜 시기가 맞았지만 본인도 부하의 그런 건의를 기분 나빠하지 않고 적극 수용하여 바로 축구 한 게임 하러 나가기도 했다. * 합참 시설 중에는 출입문이 유리로 되어 있어 초병이 출입인원 신분을 확인하고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주는 곳이 있다. 그런데 어느 초병이 근무 중 조작미숙으로 어느 소장(투스타)이 미처 지나가기도 전에 문을 닫아버리는 사고를 낸 적이 있다. 그 소장은 피가 나는 입을 감싸쥐고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고, 초병은 어쩔 줄 몰라 식은 땀만 흘리며 난감해하는데 그 뒤에서 어느 중장이 소장을 향해 "이봐 아무개 장군, 자네 뭘 그런 걸 갖고 그러나? 자, 내가 열어줄 테니 이리로 들어오게"라며 직접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그 중장이 바로 합참 작전본부장 시절의 서 장군이다. 그 일이 있은 뒤 그 초병은 서 장군을 볼 때면 장관이나 합참의장 못지않게 큰소리로 절도있게 경례를 붙였다는 후문. * 영어를 잘한다. 장교 중에서도 요직인 합참, 연합사 라인에서 근무하려면 영어를 못해서는 안 되기에 장군 중에서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다. [[한미연합군사령부]]에서 준장 시절 3년 반 내내 근무하기도 하였고 한미 작전에 대한 전문성이 매우 높다. 한미 합동훈련 시 [[통역장교]]가 자신의 말을 전달할 때, 그 내용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실하게 전달하지는 못했는지 한마디 하기도 했다.[* [[김승겸]]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육사 42기)도 영어가 유창하여 연합사 통역병에게 갈굼을 시전했다고 한다.] 듣는 거야 뭐 말하는 것보단 쉽지 않으냐 할 수 있는데, 일반 생활영어도 아니고 대규모 합동훈련인데 쓰는 용어부터가 차이가 나며 애당초 영어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았다면 표현이 어땠는지는 물론이요 통역 내용 자체를 몰랐을 것이다.[* 물론 [[전인범]] 중장처럼 통역 없이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유년 시절에 [[외교관]]인 어머니 [[홍숙자]]를 따라 [[미국]]에서 생활하며 영어를 습득한 특이 케이스로 보는 것이 옳다.물론 장군 정도 되면 미군과 협력할 일이 꽤 있기에 기본적으로 영어를 다 할줄 알지만 그 중에서도 잘하는 경우. 군에서 장군정도 되는 인물이 통역사를 업으로 할 것도 아니고, 엄연히 군사작전이라는 고유의 전문 분야가 있는데 영어를 상당부분 이해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 나이대 중년 남성들 치고 그만치 영어를 하는 사람도 드물며, 장성급 지휘관에게 가장 요구되는것은 어학능력이 아닌 군사작전 전문성이다. ] * [[천주교]] 신자이며 세례명은 [[시몬]]이다.[* 같은 천주교 신자인 [[김영환(육사42기)|김영환]](육사 42기) 중장은 루치오, [[안영호]](육사 42기) 중장은 안셀모, [[황대일]](육사 43기) 중장은 가브리엘이다.] 2020년 8월 [[천주교 군종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에 선출되었다. * 천주교 신자이지만 타 종교에 대해서도 이해가 깊다. 사모님과 개신교 교회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장성급 지휘관들은 자신의 종교가 아니더라도 부대 통합과 종교 존중의 차원에서 타 종교행사에도 종종 참석한다.], 목사가 서욱 장군을 앞으로 모셔서 짧게 모두말씀을 한 적이 있다. * 어느 한 사업가가 부대에 강연차 방문한 적이 있는데, 서욱 장군이 중대장일 당시 휘하 병사였다. 사업가분이 술회하기를 당시 상관 말씀이 "서욱이는 별일 없으면 참모총장까지 갈 거다."라고 하셨는데 진짜로 그 말이 이루어졌다. 당시 그 상관께서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인지 아니면 진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아무한테 빈말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관장교 시절부터 이미 능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 소령 시절[* 아래에 적힌 부하 장병들의 인원수로 봤을 때 대대 작전장교 시절로 짐작된다.] 병사의 증언에 따르면 장교 1명에 병사 2명이 딸린 부서에서 근무했는데, 이상한 업무 안 시키고 쉴 때 쉬게 해주고 농담도 잘하고 스마트함 그 자체라고 한다. 그 시절에도 다른 장교들이 "별은 무조건 단다"는 평이 있었다고 한다. * [[광주인성고등학교]] 5회 동기생인 [[정종제]] [[광주광역시 부시장]]은 "서욱 장군의 육군참모총장 내정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뻤다"며 "동문들은 물론 광주 출신이 군의 요직에서 일을 하게 돼 지역민으로서 자랑스럽고 경사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고교 시절 성실하고 긍정적 사고의 소유자였으며 운동도 잘하고 나름의 기준과 원칙이 명확한 친구였다."며 "교우관계도 넓고 소통을 잘해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고 술회한 바 있다. * [[육군참모총장]] 시절 학생군사학교를 시찰하고 장교 후보생의 부모와 전화통화를 시켜준 적이 있는데 [[https://m.fmkorea.com/3220456170|이런 드립이 나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