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대학교/학부/인문대학 (문단 편집) ==== 한국사학전공[* 구 국사학과.] ==== 과반 및 슬로건: 파괴/건설/해방의 그날까지 진군하는 국사/새날반 1926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조선사학전공(제1강좌 주임교수 [[https://ja.wikipedia.org/wiki/今西龍|이마니시 류]](今西龍), 제2강좌 주임교수[* [[대학예과|예과]]부장 겸임] [[https://ja.wikipedia.org/wiki/小田省吾|오다 쇼고]](小田省吾)으로 출범하여 [[신석호]](예과 1회), [[류홍렬(역사학자)|류홍렬]](예과 7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5623|이인영]](학부 9회 졸업)[* 일본에서 1933년 [[구제고등학교|마쓰모토고등학교]]를 졸업하였기 때문에 동격의 경성제대 예과를 거치지 않고 바로 법문학부로 입학하여 사학과를 1937년 졸업하였다.] 등을 배출하였다. 경성제대 법문학부 조선사학전공은 광복 후 경성대학 법문학부 사학과를 거쳐 1946년 [[국대안]]으로 성립된 국립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가 되었다. 문리대 사학과는 [[경성제국대학]] 출신의 [[류홍렬(역사학자)|류홍렬]]·[[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5623|이인영]]·[[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9494|김성칠]] 교수, [[와세다대학]] 사학·사회학과 출신의 [[이병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9340|김상기]], [[손진태]] 교수 그리고 [[게이오기주쿠대학]]출신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1427|강대량]][* 강진철(姜晉哲)로 개명.] 교수 등이 부임하여 교수진이 구성되었다. 그러나 [[6.25 전쟁]]이 발발하여 손진태 교수와 이인영 교수는 납북되어 곧 세상을 떠났고, 강대량(강진철) 교수는 학교를 그만두었으며,[* 이후 [[고려대학교]] 교수로 다시 부임.] [[김성칠]] 교수는 1951년에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는 등 큰 파동을 겪었다.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 이병도·[[류홍렬(역사학자)|류홍렬]] 두 교수가 외롭게 국사학을 이끌어갔다. 전쟁 후에 불어닥친 동서냉전의 와중에서 민족주의적 학풍이나 마르크스주의적 학풍은 사라지고, 엄밀한 아카데미즘이 학계를 지배했다. 1960년대에 들어와 그동안 국사학계의 원로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병도 교수가 1961년, 류홍렬 교수는 1966년 정년퇴임하면서 사학과에는 한 차례 세대교체의 바람이 불었다. 한우근(서울대 1회), 김철준(서울대 3회) 등 신임 교수들이 임용되기 시작했으며, 이어서 1969년 문리대 사학과의 국사연구실/동양사연구실/서양사연구실 등이 3사과로 독립하면서 국사학과가 되었고 관악캠퍼스 종합화에 따라 문리대가 인문대/사회대/자연대로 나눠지며 국사학과는 인문대학 소속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https://koreanhistory.snu.ac.kr/node/2|국사학과 소개]] 참조. '헬사과'로도 불리는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에 비해 커리큘럼이 상당히 널널한 편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원 진학자가 적지도 않지만, (과 규모가 일단 크기도 하고..) 이러한 특성 때문에 고시생들이 유독 많고, 경영대나 경제학부 등으로의 전과를 위한 유용한 '회전문'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커리큘럼을 빡시게 굴려도 별 소용이 없다는 뜻. 교수진은 역시 다른 인문대 학과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대학들에 비해 다양한 전공의 전임 교수들이 많이 재직 중이다. 한국사 전공의 전임교수가 두 자리수로 존재하는 학교는 서울대 국사학과가 유일하다. 고대사 1명(백제사 및 역사고고학), 중세사 1명, 근세사(조선시대사) 4명(정치사, 과학사, 사회사, 사회경제사), 근대사 2명(정치사, 사상사), 현대사 3명(정치사, 과학사, 냉전사), 불교사 1명으로 총 12명에 달한다. [* 한국사학 전공의 규모가 큰 고려대 한국사학과의 경우도 전임교수가 8명에 불과하다.] 발해사 전공이었던 송기호 교수의 정년퇴임 후 자리가 빈 고대사 전공을 충원하지 않고 현대사(한미관계사) 전공인 이동원 교수가 임용되었는데 대학원생의 전공 수요도 그렇고 근현대사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1981년 노태돈 교수가 임용되면서 김철준, 노태돈(1981~88), 노태돈, 송기호(1988~2021)로 40여년간 2인체제로 돌아갔던 고대사 전공의 규모가 줄어드는 모양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