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대학교/학부/인문대학 (문단 편집) ==== 동양사학전공[* 동양사학과.] ==== 과반 슬로건: 용화반 1926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동양사학전공[*중국사전공](강좌 주임교수 오타니 고스케(大谷勝眞))과 이듬해 증설된 국사학전공[*일본사전공](강좌 주임교수 [[https://ja.wikipedia.org/wiki/田保橋潔|다보하시 기요시]](田保橋潔))으로 출범하였고, 예과 3회 신입생 양주화[*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출신으로 [[성동고]], [[경기고]] 교장을 역임했으나 납북.]·엄무현[* [[동래고등학교|동래고보]] 출신으로 1931년 학부 졸업논문 "동양사 상에서 흉노민족의 흥망성쇠에 대하여(東洋史上に於ける匈奴民族の興亡盛衰に就いて)"를 「신흥」게재했으며 해방 후 납북 추정.]부터 18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3869|이기영]] 등을 배출했다. 이 중 경성제대 사학회보에 조선인 학생으로는 유일하게 논문이 실린([[http://hyundammungo.org/m/view.php?idx=5746|참조]]) 예과 4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631137#home|김종무]]([[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2003100051|참조]])는 해방 후 1946년 국립서울대학교 출범 초기에 문리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임했으나 1948년 [[경기고등학교]](당시 6년제 경기중학교) 교장으로 초빙되어가면서 서울대 동양사학과(당시 사학과 동양사학연구실)는 [[와세다대학]] 출신의 김상기 교수 위주로 돌아가게 되었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 시절 국사학연구실, 동양사학연구실, 서양사학연구실이 1969년 3사과로 독립하면서 현재에 이른다. 2000년대 들어 [[학부제]] 도입 풍조에 따라 3사과 통합 논의가 이뤄졌으나 한 표 차이로 부결된 바 있고, 최근 역사학부 통합을 가결하여 결국 통합되었다. 학점은 서사과보다 좀 덜 짤지 모르나, 학사과정의 '빡셈'으로는 인문대 최악을 자랑하는 학과이다. 학사논문을 세번 이상 퇴짜 맞은 사례도 있으며, 심지어 이래서 결국 졸업을 못한 케이스도 있다고 한다. 반대로 잘 쓴 학사논문은 학과에서 내는 학술지에 실어준다. 중국사학의 거두인 [[민두기]] 선생이 싹수가 보이는 대학원생들에게 중국의 각 시대별로 전공을 던져주고 석사과정이 4~5년씩 걸릴 정도로 극도로 엄격하게 교육한 것에서 유래한 '민두기 스쿨'의 근거지이다.[* 다만 중국사만 권한 것은 아니다. 김호동 교수에게 중앙아시아사를 권한 것도 그였다고.] 이는 한국의 동양사학(특히 중국사학) 발전에 큰 역할을 했지만, 이와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은 극렬한 충돌을 빚기도 하였다.[* 대표적으로 고 김성칠 선생의 아들인 역사학자 김기협이 있다. [[http://orunkim.tistory.com/62|#]] ] 이런 학풍은 현재도 남아있어 학부생이라도 한문을 읽지 못하면 학과에 남아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나만 예를 들자면, 구범진 교수는 자신의 학부강독수업(전공필수)에서 (번역은 고사하고 표점도 찍혀있지 않은) 조선시대의 외교문서들을 가지고 수업을 하기도 하였다.[* 이건 약과였고 구범진교수가 시간강사이던 2004년 서울대 첫 강의에서는 아예 청나라 기밀문서인 군기처 주비유접 해석이 주가 된 적도 있었다. 심지어 이 수업은 강독수업도 아니었다.] 여기에 중국어와 일본어[* 2차 세계대전 관련 일본 정부 문서는 [[가타카나]]로 잔뜩 적혀있고 한자 사용도 괴리가 꽤 있다. 현대 일본어를 잘 안다면 현대 일본어로된 서적을 참고할 수 있으니 원문만 죽어라 번역할 필요는 적다.]도 거의 필수로 꼽힌다. 학부 입학 초기 또는 외부인이 보기에는 이 같은 커리큘럼이 매우 경악스러울 수 있지만, 1-2년쯤 구르다보면 자연스레 일본어 학원을 등록하고, HSK 급수 준비를 하며, 적당히 한문 번역을 해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들 언어에 베이스가 완전히 갖추어져 있지 않더라도 입학이나 진입 자체에는 큰 무리가 없다. 전체적으로 중국사가 강세를 보이지만, 일본사나 (튀르키예를 포함한) 중앙유라시아사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중국사 4명(고대, 중세, 근세, 근대전공), 일본사 2명(중세, 근현대전공), 서남아시아사 1명(오스만제국사전공), 동남아시아사 1명(베트남 근현대사 전공), 중앙아시아사 1명으로 총 9명의 교수진이 구축되어 있다. 타 대학 사학과의 동양사 전공에 비하면 교수진이 적지 않으나, 아시아 전 지역을 다루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앞의 서술이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중국(정확히 말하자면 북경대학을 제외하고는 그닥 올바른 표현도 아님)에 비견할 정도는 아니지만, 현재 한국의 동양사학의 현실에서는 나름 선전하는 편이다. 예컨대 2021년 2월 현재 고려대 사학과의 경우 중국근현대1 일본사1, 연세대는 중국근세1 중국근현대1 일본사1, 서강대는 중국근현대1 일본사1, 성균관대 중국중세1 일본사1, 한양대 중국중세1 중국근현대1, 중앙대 중국근현대1, 경희대 중국근세1 중국근현대2, 외국어대 중국중세1 중국근세1, 시립대 중국중세1 등이다. 최근 일본의 경우도 중국사를 적어도 시대별로 한 명씩 채용한 학교는 없다.(단적으로 동경대학은 중국사 전공 교수는 딱 2명이다) 이렇게 본다면 현재 동양사학과의 교수 구성이 다소 아쉽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 정도의 구성을 갖추고 있는 학과도 드물다. 이전에는 동남아시아사 전공 영역도 있어서 원래 일본사 전공 한 자리가 동남아시아사 전공 티오였다. 그러나 유인선 교수(월남사 전공) 퇴임 이후 몇 차례 동남아시아 전공자를 채용하려는 공고가 있었으나, 적격자를 찾지 못하고 동남아시아 TO를 일본사 TO로 충당하고, 대신 동남아시아 TO는 본부의 외국인 교수 TO로 충당하여, 외국인 교수를 채용했다. 그러나 임용된 외국인 교수는 재임용 심사를 앞둔 시점까지도 review 혹은 article 한 편 제출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사실 해당 외국인 교수는 서울대를 발판 삼아 해외로 임용을 준비 중이었고, 당시 인문대학 모 학과의 펀딩을 이용하여, 해외 학자를 초빙하는 기회를 발판삼아, 해외로 run하였다. 대신 모 학과 동남아시아 전공자를 통해 동남아시아사 강좌를 개설하려고 했으나, 이것이 성사되지 않고 대신 국내 연구자를 초빙하여 동남아시아사 강좌가 개설되었다. 덕분에 최근에는 일본사 연구에 관심을 가진 학부생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앞으로도 인도/동남아시아사 연구는 아시아언어문명학부가 전담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19년 3월부로 베트남 근현대사를 전공한 외국인 교수가 동남아사 전공 담당으로 임용되었다. 꾸준히 동남아사 교수를 데려오고 있는걸로 보아 동남아사 연구를 아언문에 내주고 싶지 않은듯. 하지만 이를 꾸준히 유지하려면 데려온 외국인 교수들이 성과를 잘 내면서 한국에 꾸준히 체류해야 하는게 과제다. 대표적인 학과 동문으로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