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대학교/학부/인문대학 (문단 편집) === [[고고미술사학과]] === Dept. of Archaeology and Art History ||1926||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 미학·미술사전공|| ||1943||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문학과 미학·미술사전공|| ||1946||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인류학과|| ||1946||폐지|| ||1961||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고고인류학과|| ||1975||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학과|| ||1983||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2009||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고고학전공/미술사학전공|| 과반 슬로건: 함께 만들어가는 변화의 울림, 공명반 [[경성제국대학]] 시절에도 법문학부 [[철학과]]에 미학·[[미술사]]전공(제1강좌 담임교수 [[https://ja.wikipedia.org/wiki/上野直昭|우에노 나오테루]](上野直昭), 제2강좌 담임교수 [[https://kotobank.jp/word/田中 豊蔵-1649153|다나카 도요조]](田中豊藏))이 개설되어 있었고 [[https://ko.wikipedia.org/wiki/고유섭|고유섭]]([[https://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496139|참조]]) 등을 배출하였으나 고고학 단독 전공은 개설되지 않았다. [[광복]] 후 1946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창립 당시 인류학과가 개설되었으나 이내 폐지되었다. 그러다 [[김원용]] 교수 등의 활약으로 고고인류학과가 개설되었고, 1975년 단과대학 개편 과정에서 고고인류학을 다루는 인문대의 고고학과와 문화인류학을 다루는 사회대의 인류학과로 분리되었다. 인문대학 고고학과는 이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으로부터 미술사학자 안휘준 교수를 전입시켜 오면서 미술사학을 포괄하는 고고미술사학과로 발전하였으나, 고고학자와 미술사학자를 겸한 원로세대가 은퇴한 현재, 고고학, 미술사학 각 전공은 발전적으로 독립하는 수순을 밟고 있으며 2009년에는 세부전공이 구분되었다. 다만 소비자아동학부, 물리천문학부와 같은 학부가 아닌 학과 체제이므로 입시에서는 수시 일반전형 10명으로 합쳐서 선발한다. 그래서 자기소개서에서는 둘 중 더 관심 있는 한 전공을 약간 강조해서 쓰되, 다른 전공에 대한 역량도 어필하는 것이 좋다. 합격하면, 1학년 때는 세부전공 소속 없이 자유롭게 전공탐색 강의를 듣고, 2학년 때 세부전공에 진입하게 된다. [[http://www.archaeology-arthistory.or.kr/introduce/history05.htm|'공식적으로']] 두 전공 모두 각자 분리 및 승격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5동에 위치해 있는 고고미술사 학과 사무실에 [[두더지]] 그림이 붙어 있는데, 그 두더지 밑에는 한자로 "고고인류학과"라고 써 있다. 이 두더지는 현재 학과의 [[마스코트]] 격으로 쓰인다. 본래 공명반방은 리모델링 이전의 14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상당히 넓은 크기와 괜찮은 시설을 자랑했는데, 14동이 리모델링에 들어가게 되면서 쫓겨났고 그렇게 배정받은 7동의 반방은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고, 이전보다 좁은 공간이었다. 이 무렵 인문대 내에서 공간문제가 공론화되기도 했었다. 2014년 하반기에 과/반 학생회가 학생회칙 제정과 함께 새롭게 구성된 후, 매년 9월 경에 선거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제4대 학생회장이 재임 중이다. [[https://www.facebook.com/gomigongmyoung|페이스북 페이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