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원랑 (문단 편집) == 생애 == 연주(兗州) 출신으로, [[수나라]]가 [[양제(수)|양제]]의 실정으로 인해 혼란이 극심해지자, 617년에 반란을 일으켜 동평군(東平郡)을 공격하여 점거하였다. 서원랑은 처음에 [[이밀]]을 섬겼다가, 이밀이 몰락한 이후 [[왕세충]]에게 귀순하였다. 619년 서원랑은 [[당나라]]에 귀순하여 연주 총관으로 임명되었고 노군공(魯郡公)으로 책봉되었다. 같은 해에 활주(滑州) 자사 왕궤(王軌)의 종이 왕궤를 살해하고 [[두건덕]]에게 투항하자, 두건덕은 왕궤의 종을 살해하고 왕궤의 목을 활주로 다시 돌려보냈다. 이에 활주 백성들이 감복하여 두건덕에게 항복하자, 서원랑은 정세를 관망하다가 두건덕에게 귀순하였다. 621년 두건덕이 패망하고 왕세충이 투항한 뒤, 서원랑은 다시 당나라에 귀순하여 이전과 같이 연주 총관으로 임명되었고 노군공(魯郡公)으로 책봉되었다. 같은 해 두건덕의 휘하 장수인 [[유흑달]]이 두건덕의 복수를 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다. 유흑달이 비밀리에 서원랑에게 거병에 응하도록 연락하자, 서원랑은 동행하고 있던 성언사(盛彦師)를 구금하고 연주에 할거하여 군대를 일으켜 유흑달에게 호응하였다. 서원랑은 노왕(魯王)을 칭하고 유흑달로부터 대행대원수로 임명되었으며, 이로 인해 연주, 운주(鄆州), 진주(陳州), 기주(杞州), 이주(伊州), 낙주(洛州), 조주(曹州), 대주(戴州) 등 8개 주가 서원랑에게 호응하게 되었다. 하지만 623년 유흑달이 평정되자, 서원랑은 밤에 성을 버리고 달아났으나 도중에 살해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