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태지 (문단 편집) === [[서태지와 아이들]]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pds.joins.com/2012032309061283746_8.jpg|width=100%]]}}}||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file2.instiz.net/5fe84ee4b2a6d1e24014d48eef12bf23.jpg|width=100%]]}}}|| 메탈밴드 장발 베이시스트에서 소년계 댄스 가수로 변신한 모습.[* 특종 TV연예의 심사위원 [[전영록]]은 '메탈밴드의 서태지가 이렇게 앳되고 예쁜 얼굴인 줄 몰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 결성 후 방송, 라디오 등 각종 매체 활동을 하다가 92년도 MBC 쇼 프로그램 <특종 TV연예>에 출연하며 전국의 청소년층에게 폭발적인 충격을 안겼다.[* 흔히 <특종 TV연예>가 최초 출연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이 방송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착오가 빚어진 것이다. 그 전에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및 [[젊음의 행진]]에도 출연했다. [[https://m.entertain.naver.com/read?aid=0000605168&oid=144&lightVersion=off|기사]]] 작곡·작사가들이 신인 가수들을 평가하는 짧은 코너에 출연해 '''[[난 알아요]]'''를 불렀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였는지 개그맨 [[지석진]]도 무명가수 시절 부른 '[[난 알아요]]'라는 곡으로 거쳐가기도 했다.][* 흔히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무대를 특종 TV연예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당시 매니저를 맡았던 최진열 씨의 증언으로 그 이전에도 많은 매체에 출연했다고 한다.] 그 당시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이러했다. 박한 평가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참신하지만 리듬은 좋으나 멜로디 라인이 약하다.(8점) '''- 밴드 '다섯손가락' 멤버 겸 작곡가 하광훈'''[* [[바비킴]], [[변진섭]], [[조관우]], 이루에게 곡을 줬던 작곡가. 현재 예당엔터테인먼트 음악본부장으로 [[임재범]]의 빈잔을 편곡했다. 그리고 하광훈은 무려 20년이 지난 2011년까지도 [[악플]]에 시달렸다(…).[[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6&cid=307151&iid=23847377&oid=014&aid=0002547028&ptype=011|#]]] >음악은 새로운데 가사의 내용이 진부하다.(7점) '''- 작사가 양인자'''[* 한국 록계의 초기 거장 [[김희갑(음악인)|김희갑]]의 부인이자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작사, 드라마 작가 출신으로 [[김수현(작가)|김수현]] 작가의 동기.] >노래는 섬세한데 과격한 댄스동작에 묻힌 거 같다.(8점) '''- 방송인 이상벽'''[* [[아침마당]]의 전 수장. 공교롭게도 11년 경력의 아침마당을 첫시작한 게 고작 이 프로그램 나온 지 5일 전이었다. 지금은 불교TV에서 프로그램 진행 중이다. 당시 특종 TV연예에서는 연예평론가로 소개되었는데 당시 그에 대한 칼럼을 많이 썼다. 덧붙이자면 [[세시봉]] 멤버의 일원이었다. 물론 직접 노래한 것은 아니고 당시 세시봉에서 사회를 봤다고 한다. 연예 및 음악 평론은 그 당시부터 시작했다.] >새 장르를 열었다는 점에 관심을 표한다. 하지만 평가는 우리들이 하는것이 아니라, 시청자 여러분들이 하는것이다. (8점) '''- 가수 [[전영록]]'''[* [[황해]] & [[백설희]]라는 1950~60년대의 전설적인 배우 & 가수 부부의 아들이다. 딸인 전보람은 [[티아라(아이돌)|티아라]]의 멤버다. 본인도 198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의 아이콘 중 한 명이자 원조 멀티 엔터테이너였다. [[2008년]] 17집 발매. 영상을 보면 진행자 임백천이 별도의 수식어 없이 바로 "전영록 씨 안녕하세요!"(방청객 와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평균 '''7.8점'''으로 '''신인무대 첫 회 출연자이자 최저점 득점자'''라는 불명예를 기록했는데 이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출연한 신인가수 중에 평균 8점 이하의 가수는 한 팀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8점 셋, 7점 하나'로 평균 7.75이며 여기선 끝의 5를 [[반올림]]해서 7.8로 발표했다. 그 당시 매니저 최진열이 방송 끝난 후 방송국에서 "기껏 출연하라고 해놓고 엿먹인다"라고 흥분할 정도로 이례적인 일인 데다 [[https://youtu.be/Io6_zQyOIhQ|서태지는 이 프로그램의 음악 담당이었다]]([[스태프롤]]에도 이름이 나왔다).][* 2014년 김구라의 인터뷰에서 서태지는 '원래 당시 프로그램 컨셉이 가수들에게 평론가들이 혹평을 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은 그런 얘기가 나올 줄 알았다'라며 당시 평론가들을 감싸주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평가는 위에 언급된 심사위원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랩 음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 시절이었기에 당시 매니저를 맡고 있던 최진열의 증언으로는 방송국에 홍보용으로 CD를 줘도 들어보고는 "그런 판데기는 이태원 클럽에나 걸어라"라며 집어던지기도 했고, 주변 선배 매니저들도 망할 것이 뻔하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비록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았지만, <특종 TV연예> 출연을 계기로 당시 세계 음악 트렌드와 한참 격리된 트롯트, 발라드 위주의 대중가요에 염증을 느끼던 당시 청소년, 대학생 층에게 이 곡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난 알아요를 필두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큰 '''폭풍'''이 시작되고 한국 가요계의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김종서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노래는 더 잘 나가는데 앨범이 갑자기 안 나가서 공황이 온건가 했더니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 것이었다. 이후 기존 가수들의 앨범 역시 추풍낙엽처럼 쓰러졌지만 자신은 <환상 속의 그대> 피처링으로 묻어갔다고 한다.[[https://youtu.be/OVYW4IHXrk8|#]]] 유튜브 관련 영상 댓글에 적힌 저 방송을 직접 봤다는 사람들이 증언을 보면 "주말이 끝나고 학교를 가니 서태지 이야기밖에 없었다", "다음날 학교 앞에 복사테입장사가 판을 깔았는데 금방 동이 났다", "방송 이후 최고가 되는데 단 하루가 걸렸음" 등으로 당시의 해일같은 반응을 알게 해준다. 그 뒤로 시대의 변화를 자각한 <특종 TV연예>는 신인에 대해서 관대한 평가를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서태지와 아이들은 <특종 TV연예> 최저점 득점자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로서 활동한 2집, 3집, 4집에 대해서는 디스코그래피를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