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태지 (문단 편집) === 사회 참여 === >'''"제가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음악이 록 음악인데요. 록 음악에는 항상 저항 정신이 들어 있잖아요. 잘못된 게 있으면 음악이나 예술을 통해서 고칠 수 있는. 그런데 [[서태지와 아이들 1집|1집]] 낼 때는 사실 경황이 없었어요. 그냥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댄스팀을 만들어서 음악적인 관심을 많이 보인 반면에, 가사적인 측면에서는 그다지 사회적 비판이라든지 사회 참여를 별로 못 했어요. 그런데 저희가 이제 나이가 좀 들면서 여유로워지기도 하고요, 그런 영향이 있기 때문에, 꼭 사회 비판적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 >1995년 12월 17일 방영된 [[추적 60분]]에서의 인터뷰 내용 * 딱히 소셜테이너, 폴리테이너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오히려 이 분류는 서태지가 아니라 대놓고 [[노무현]]의 선거 유세에 참여까지 했었던 6촌 형 [[신해철]]에게 더 어울리는 분류이다.], 소소하게나마 사회 현안에 대해 메시지를 드러낸 적이 있었다. 2003년에 덕수궁 터에 미국 대사관을 짓는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문화연대를 비롯한 30여 개 시민 단체에서 반대 운동을 벌였는데, 당시 7집 앨범을 구상 중이던 서태지도 동참한 것. 서태지는 공식 홈페이지에는 '''덕수궁터 내 미대사관 신축 반대''' 배너를 띄워 서명 운동에 협조했다. 또한 그해 12월 13일 광화문 사거리에 열린 공연에는 당시 서태지컴퍼니 소속이었던 밴드 [[Pia|피아]]가 노개런티로 출연했는데, 여기에 서태지 컴퍼니는 회사 차원에서 거리 공연에 필요한 장비 등을 지원했다고 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47&aid=0000039870|링크]] 결국 덕수궁 터에 미국 대사관을 짓는다는 계획은 없던 일이 되었다. * 2003년 3월에는 이라크전과 파병을 반대하는 서명 운동에 동참하고 성명서도 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2&aid=0000003954|기사]] 다만 활동 기간이 아니었으므로, 성명서는 [[원타임(그룹)|원타임]]의 송백경이 대신 나와서 읽었는데, 전문은 다음과 같다. >세계평화를 파괴하는 명분 없는 전쟁을 반대합니다. > 우리는 이미 6.25전쟁을 통해 죽어간 수많은 생명들과 살아도 삶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수백만의 이산가족의 비극과 슬픔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사상 유례 없는 전 세계적인 반전여론 앞에서도 평화 및 외교적 해결을 버리고 행해진, 수많은 희생자를 남기는 이라크 전쟁은 전 인류에게 인간다움과 평화에 대한 신념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어떠한 명분도 수없이 많은 민간인들과 어린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전쟁을 정당화 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미국 행정부에게 죄 없는 이라크의 많은 생명을 빼앗을 권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부시 미국 행정부는 즉시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을 중단하여 이라크 국민들이 전쟁의 불안과 공포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저는 전 세계 60억 인구에게 정의에 대한 믿음과 세계평화에 대한 신뢰를 깨뜨리는 부시 미국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며 반전평화를 염원하는 전 세계인들의 행렬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부끄러운 전장 앞에 대한민국 젊은이의 파병을 반대합니다. >특정국가의 자국이기주의가 빚어낸 침략전쟁에서 대다수 국민의 여론과는 반대되는 한국정부의 파병계획에 반대합니다. >대한민국은 침략전쟁을 부인한다고 명시한 헌법을 준수하여 정부는 더 이상 국익을 명분으로 이라크전에 대한 굴종적인 지지를 통해 후손에게 부끄러운 역사를 남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정부는 단 한 사람의 대한민국 젊은이도 당당하지 못한 외교의 희생물로 내몰아서는 안 될 것이며 2002년 월드컵 당시 세계에 널리 보여준 우리 민족의 저력이 강대국의 침략전쟁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라는 부끄러운 현실로 가려지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저는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미국의 명분 없는 전쟁에 대한 지지 및 이라크 전쟁파병 계획을 즉시 철회하기를 촉구합니다. >저는 한국대중음악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라크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이라크전쟁을 반대하며, 반전평화운동을 펼치는 문화인의 대열에 서서 그들과 행동을 함께 할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 >2003년 3월 25일 서태지 * 이러한 행적 때문에 당시엔 뜬금없이 일각에서 반미 가수로 인식되어[* 애초에 서태지가 미국 랩을 한국 대중음악계에 가져왔던 이력을 생각해보면 반쪽짜리 논리다. 당시 미국인도 이라크 전쟁 반대하는 사람들은 꽤 많았다.], 2004년에 미국 영주권을 포기한 것을 그런 의도로 해석하는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2&aid=0000008549|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냥 영주권을 갱신하지 않은 것뿐이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에 머물고 있어서 굳이 미국 영주권을 갱신할 필요를 못 느꼈다는 것.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0049899|기사]]. * 한편, 당시 정치권에서는 서태지가 어떤 정당을 반대하는지를 밝힐까 봐 걱정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의 [[이재오]] 의원은 연예인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경고하면서 문화 전략을 잘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4061170295|기사]]. *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태지의 팬을 자처했다. '''문화 대통령'''이라는 별명도 그가 붙여 준 것이며,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콘서트 당시엔 화환을 보냈다. 또한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까지 했으나 서태지는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한편 [[마이클 잭슨]]이 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이처럼 여러 번 만남을 거절해 오다 김대중 대통령 퇴임 이후인 2004년에야 처음으로 만났다. 대통령 당선 전과 재임 시기에 만나는 것은 아무래도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태도를 취한 것이었다. * 이 때문인지 서태지는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에 발언도 홍보에 이용될 수 있다며 극도로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다만 2010년대 이후 들어서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감명 깊게 보았고 이를 계기로 원작 소설도 읽었다며 소설 [[파이 이야기]]를 추천하기도 했다. * 1996년에 개원한 국내 최초의 장애인 전문 치과 병원에 기부한 사실이 20년 만에 알려졌다.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213255|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