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태지 (문단 편집) === [[시나위]] === 17세에 학교를 자퇴하고 [[활화산]]이라는 [[밴드]]에 잠깐 머물렀지만 멤버의 [[군입대]]로 별 활약 없이 [[해체]]되어 버렸다. 이후 기타리스트 이중산의 소개로 한국 [[락]]의 대부 [[신중현]]이 운영하던 [[클럽]] '우드스탁'에서 연주할 기회를 잡게 되었으며, 우연히 이 모습을 본 신중현의 아들이자 시나위의 리더인 신대철의 눈에 띄어 픽업되면서 마침내 [[시나위(밴드)|시나위]] 4집의 베이시스트로 참여하게 된다.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seotaiji.com/6.jpg|width=100%]]}}}||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seotaiji-archive.com/718f0f6ad2d8f40bb4a862bd3f6b5b46.jpg|width=100%]]}}}|| (1990년 당시 [[시나위(밴드)|시나위]]. 왼쪽부터 베이시스트 서태지, 리더 [[신대철]], 보컬 [[김종서(가수)|김종서]], 드러머 [[오경환(드러머)|오경환]].[* 서태지와 김종서가 그렇게 짤없이 나가버리고는 신대철은 오경환과 함께 신대철과 자유를 결성하여 계속 활동을 이어나갔으나, 시나위 5집 멤버에 오경환은 참여하지 않았다. 다만 뮤즈에로스, 라디오데이즈 등의 준수한 헤비매틀 밴드들에 그 이후에도 꾸준히 참여하였고, 드럼 교실도 여는 등 나름 락계에서 알아주는 인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8년 5월 간경화로 사망했다는 뉴스가 알려졌다.]) >한 아이가 매일 우드스탁으로 와선 몇 시간씩 제가 기타 치는 모습을 보곤 했죠. 처음엔 의식하지 않았죠. 내심 눈에 띌 만큼 머리가 긴 소년이 뚫어져라 공연에 몰두하는 걸 보고 헤비메틀 지망생이거나 팬이려니 했어요. 그렇게 1달 정도 계속되고, 말수가 적은 저로서도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때 말을 걸어보자는 심산으로 기타를 칠 줄 아느냐고 물었죠. 의외로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기타를 잡았어요. 거침없이 연주하는 모습은 요즘말로 '장난'이 아니었죠. 그 자리에서 바로 '시나위'에서 활동을 해보자고 제의했고 그는 무척 기뻐했어요. '''- 당시를 회상하며, 신대철''' 서태지 본인의 말대로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던 신대철에게 돈과 함께 픽업 제의를 받았지만 돈을 마다하고 함께 활동하게만 해달라고 말할 정도로 기뻐했고, 시나위의 멤버가 된 후 우드스톡에서 매일 하루 반나절을 함께 연주 연습만 하며 살면서 바로 4집 앨범 작업에 착수해 베이스와 드럼 편곡을 담당했다.[*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려서, 김종서의 제안으로 실제 나이보다 2살 올려 20살로 속여서 활동했다.] 그러나 활동 기간 동안 [[신대철]], [[김종서(가수)|김종서]], 서태지 3명의 음악적 견해 차이[* 헤비 메탈을 고집하던 리더 신대철과 달리 김종서는 대중적이고 듣기 편한 록을 주장했고(이후 김종서는 [[락발라드]]로 솔로 데뷔한다), 서태지는 '''새로운 음악'''을 추구했다. 신대철은 서태지에게 고전 록 밴드들의 음악도 들어보길 권유했으나, 서태지는 고전 록 밴드의 음악을 듣는 것을 고역처럼 여겼고, 새로운 장르에 더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신해철]] 왈, 락 말고 다른 장르는 전부 쓰레기라고 선배들에게 [[세뇌]](...)를 받던 시절.][* 서태지 본인도 당시 [[랩]] 음악에 관심을 갖자 [[록]] 선배들이 "'''삼표 음악'''을 왜 듣냐"며 타박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참고로 삼표는 [[연탄]]을 의미해서 흑인 음악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었다.(...) 현재도 친분을 유지하는 김종서조차도 당시 서태지가 댄스 음악을 하겠다고 하자 '록의 정신을 버리고 댄스를 한다니 얘가 미쳤나'라고 생각해 실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난 알아요'와 '환상 속의 그대'를 듣고 너무 좋아서 마음이 바뀌었다고 한다.]로 서서히 멤버 간의 팀워크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팀 해체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어느 제작자에게 공연 사기를 당했는데, 88체육관에서 예정된 공연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던 시나위 멤버들이 막상 공연장에 도착하니 공연 2시간 전까지 허름하게 무대 짜는 망치 소리가 들리는 등 말도 안 되는 무대가 서있었다고 한다. 크게 화가 난 신대철은 공연 주최 측과 거하게 싸운 뒤 술을 마시고 뛰쳐나가고, 미처 다 만들어지지도 않은 공연장에서 줄이 안 보일 정도로 기다리는 팬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었던 [[김종서(가수)|김종서]]와 서태지는 결국 단 둘이 엉성한 공연장에서 공연을 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시나위(밴드)|시나위]]는 해체되고 서태지는 실직하게 된다.[* 공연 사기는 서태지 본인이 이동연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해체 원인이고, 신대철은 이이제이에서의 인터뷰에서 신대철이 서태지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킨 데 대해 서태지가 좀 반발한 것이 직접적인 탈퇴의 계기가 되었다고 증언했다. 다만 심각하게 말한건 아니고 웃으면서 농담조로 썰을 풀었다. 어찌됐든 당시 서태지는 명백히 미성년자인데 담배 심부름 시킨건 신대철이 잘못한 것이다. --비록 중2때 담배를 피운 서태지긴 하지만 넘어가자.-- 물론 신대철 왈 (꼰대 의식이 사라진) 지금 와선 자신이 직접 담배 사러 가지만, 당시엔 지금만큼 흡연을 범죄시하진 않던 시대였고 5살이나 차이가 나는 나이차 등으로 막내들이 으레 하는 일쯤으로 여긴듯하다.] 이후 김종서와 함께 '캔기획'에 찾아갔으나, 김종서만 영입되고 본인은 불발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른 뒤 캔기획의 강승호 대표는 엠넷 비틀즈코드 2011년 6월 23일 방영분에 출연해서 "그 당시 악기 만지는 걸 좋아하던 서태지가 다른 회사에 갔다가, 그쪽 레코딩용 콘솔을 보곤 나와 계약을 못 하겠다고 통보해왔다"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서태지, 강승호 양쪽 다 친분이 있는 매니저 최진열이 쓴 책에도 보컬과 연주자 둘 다는 불필요하기 때문에 '강승호가 김종서만 영입하고 서태지는 거절했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강승호의 증언은 예능 프로그램의 특성상 팬들의 심기를 고려한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그 후로도 계속 밴드를 알아보거나 직접 멤버를 모집해 밴드 결성을 시도하기도 했고, 한국에 비해 음악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일본]]에서 활동하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매니저 최진열의 증언에 따르면, 서태지와 아이들 [[일본]] 공연 당시 서태지의 [[일본어]] 실력이 꽤나 능숙해서 통역 없이 혼자 일본에서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시나위 시절부터 쭈욱 들어오던 [[랩]] 음악에 심취해, 새롭게 뭔가 획기적인 그룹을 한 번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하며 기행을 벌이기 시작한다. 전 매니저 최진열이 서태지 부모님에게 직접 들은 바로는 한때 [[히키코모리|어머니가 차려 방에 넣어주는 밥만 먹으면서 6개월간 방 밖에 나오지 않고]] 랩 연습과 컴퓨터 음악 작곡 공부에만 몰두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무궁화 밴드'라는 팀의 일원으로 무대에서 용돈을 벌었고[* 무궁화 밴드 멤버의 서태지에 대한 전체적 평가는 "일 끝나면 집에 가는 애".], '마이하우스'라는 클럽에서 일하다가 [[양현석]]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양현석과 팀을 꾸리기로 하고[* 처음엔 서태지가 댄스 가르쳐달라고 양현석에게 접근했는데, 양현석이 여차저차해서 서태지 노래를 들어보고는 삘이 와서 자기도 팀에 넣어달라고 했고--그렇게 인생이 바뀌었다-- 서태지가 고민하다 수락했다고 한다.] 제3의 멤버를 물색하며 이리저리 멤버를 갈아치워보다가 마지막으로 [[이주노]]를 선택하며 1991년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했다. 사족으로 서태지라는 이름은 자신이 좋아하는 한자인 '태' 자와 '지' 자로 이름을 짓고 여기에 가장 어울리는 성씨인 '서' 씨를 합해 '서태지'로 지었다고 한다. 2009년 서태지 본인이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해 이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여러가지 설이 있었는데, 전 매니저 최진열의 증언으로는 서태후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고 공연장이라는 뜻의 영어 [[https://image5jvqbd.fmkorea.com/files/attach/new/20151201/486616/102301/264856502/61332004aa2bf9d43718110b18b83545.png|'STAGE']]를 줄여 만들었다는 설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동안은 [[일본]]의 록 밴드 [[엑스 재팬]]의 베이시스트였던 '[[TAIJI]](타이지)'에서 따왔다는 설(서쪽의 TAIJI - 서TAIJI)이 주류였는데, 이에 대해 세간의 질문이 있어서인지 시간이 흘러 서태지 본인은 별생각 없이 그냥 글자가 멋져서 지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2014년 시나위의 리더 [[신대철]]이 낸 자서전 '뛰는 개가 행복하다'를 보면 타이지에서 따온 게 맞다고 적혀있다고 한다. 헌데 이 버전에도 2가지 내용이 있는데, 본인이 타이지처럼 실력 좋은 베이시스트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서쪽의 타이지를 줄여 서태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것과 시나위 가입 후 서태지라는 예명으로 바꾸겠다고 하길래 이름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서태지 본인이 [[서태후]]의 '서태'와 [[타이지]]의 '지'를 합친 거라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두 설 다 기존 설과는 차이가 있긴 하다. 일단 서쪽 타이지 설은 이름을 지은 주체가 서태지가 아닌 신대철이고, 서태후+타이지 설이면 최진열 증언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역시 주는 서태후지 타이지 부분은 좀 약하다.] 두 설의 내용부터가 다르니 일단 뭐가 확실한 내용인지 책 출처를 확인해서 인용하는게 맞아보인다. 1995년에 공개된 공식적인 인터뷰를 보면 어느 설이든 신대철의 주장과는 다름을 알 수 있다. 애초에 상기된 캔기획 설만 봐도 알 수 있듯, 서태지가 탑스타가 된 이후 그와 관련된 썰을 주변인들이 자기 홍보 목적도 겸해 풀다보니 [[과장]]이나 [[오해]] 등도 좀 섞이면서 결과적으로 상반된 주장이 나오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교차검증|크로스체킹]]이 필요한 것. 일각에서는 일본대중음악이 개방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서태지가 일본 가수 안다고 하면 괜히 안티들 먹잇감만 주는 분쟁거리 생길까봐 일부러 그런거 아니냐고 보기도 하지만, 뭐가 됐든 이름에 관한 주장은 이름을 지은 '''본인의 주장이 공식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정 뭐하면 [[한자]] 바꿨다 식으로 개명해도 될 문제고... 당시 출간된 이동연의 저서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56312|<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며>]]에서 저자 이동연이 서태지에게 예명 작명에 관한 질문을 했었다. > 이동연: 말 나온 김에 예명에 대해 질문드리겠는데, 당신의 예명인 '서태지'가 어떻게 지어진 것일까 추측이 많습니다. >어떤 이는 영어 '스테이지'의 음차라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일본 그룹인 'X'의 전직 베이스 연주자였던 Taiji의 예명을 본떴다는 설이 있는데 실제로는 어떤 것인지. >>서태지: 제가 일단 이름을 과격하게 짓고 싶었어요.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인상적인 이름을 짓고 싶었고, 거꾸로 이름같지 않은 이름을 짓고도 싶었어요. 아까 말한 것은 관계가 없고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글자가 '''태'''자와 '''지'''자인데, 그렇잖아요. 보통 남의 이름 중에서 좋은 글자 있으면, 한 번 써 보고 싶어 하잖아요. 그래서 '''태'''자와 '''지'''자를 합성해서 이름을 지었고요, 성은 여러 개를 붙여 봤는데, 그중에서 '''서'''자가 제일 잘 어울리더라고요. 그래서 아무 뜻 없이 '''서태지'''라고 지었죠. 2001년 6집 활동을 마치고, 음향 전문 잡지 '''사운드 온 에어'''와 인터뷰를 가졌을 때도 예명에 관한 질문을 받았고 이에 대해 해명했다. 현재는 없어진 웹진이라 [[https://web.archive.org/web/20061228025006/http://soa.mnshome.com/008/08046.html|웹 아카이브 링크]]를 통해서 볼 수 있다. >SOA : 예전 X-JAPAN 의 베이시스트 TAIJI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태지씨의 이름도 거기에서 모티브를 얻는 건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서태지 : 전에도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X-JAPAN의 TAIJI하고는 전혀 무관하게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엑스저팬은 즐겨 들었지만 베이시스트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어요. 시나위 들어갈 때 그냥 본명보다는 멋있는 이름을 만들려고 해서 만들었던 거죠. 개인적으로 태자를 좋아서 썼고. 다음에는 지를 붙이고 이름에 어울리는 서자를 사용해서 이름을 만들었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