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하 (문단 편집) == 문화 == [[파일:서하 중국.jpg|width=700]] 서하 황릉의 봉분 [[파일:서하 능 중국.jpg|width=700]] 서하 능의 특이한 석상 서하 또는 서하의 정체성을 가졌던 탕구트족들이 자신들의 역사책을 기록하지 못하다보니 그만큼 서하 제국과 탕구트족들의 문화가 어땠는지 알기 어려운 면도 있다. 그나마 서하 문자들이 존재했고, 다는 아니지만 일부분 해독되는 중이라서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벽화, 도자기, 칠기, 목제나 석제, 금속제품 등의 유물들이 출토되면서 더욱 많이 알려지기도 한 점도 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한자를 참고로 한 서하 문자가 대표적이며, 불교와 유교, 토속신앙 중심의 문화가 발전되었다. 불교를 많이 믿다 보니 불화와 대장경들도 남겼다. 건축물은 일부 탑들과 성터, 그리고 서하 황릉이 있다. 서하 황릉은 "동양의 금자탑([[피라미드]])"이라고 불리며, 현재는 흙으로 쌓인 모습이지만 과거에는 여기에 탑처럼 생긴 큰 건축물을 세웠다. 다른 북방 [[유목민]] 및 기마민족들처럼 '''[[변발]]'''을 하기도 했다. 탕구트족 고유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여 송, 요, 금, 티베트, 위구르의 영향을 받기도 했으며, 그 외 서역의 여러 민족들의 문화들도 존재했다. 특히 서하는 주류 민족인 탕구트족 외에도 한족, 몽골족, 위구르족, 거란족, 티베트족이 살고 있는 다민족 국가였다. 다만 유목민의 인구가 적은만큼 인구의 대부분도 정착민인 한족이었다.[* 사실 이는 중원의 유목제국들한테서 흔하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원래부터 한족의 인구가 유목민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다보니 유목민들은 인구가 적어서 제국을 세워도 항상 인구에서 열세일수밖에 없다.] 인구는 학자들이 추정하기를 200만~300만이며 전성기 시절의 인구도 300만으로 서하는 인구가 300만을 넘긴적이 없다. 왜냐면 서하의 영토가 초원과 사막이 많은 척박한 지역이라서 생산력이 낮아 인구 증가율이 낮았으며 계속된 전쟁으로 인구의 소모가 심했기 때문이다. [[https://zh.wikipedia.org/wiki/党項#/media/File:西夏男供養人像.png|서하의 관료인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