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하 (문단 편집) == 역사서 == 서하인 자신들이 남긴 서하의 역사서는 현존하지 않는다. 다만 20세기 초에 [[둔황]]에서 아우렐 스타인(Aurel Stein)과 폴 펠리오(Paul Pelliot)가 서하의 탕구트 문자로 기록된 문헌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러시아의 표트르 코즐로프(Пётр Козлов)가 카라호토를 발굴하면서 탕구트 문헌들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들 문헌들은 대부분 불교 서적이었다. 현존하는 역사서가 전혀 없어 '처음부터 역사서 편찬 같은 것을 안 한 건가' 라는 의혹이 일기도 하지만 중원의 왕조를 모방하여 황제국의 제도를 갖춘 나라가 역사를 기록하지 않을 리는 없다. 일찍이 [[인종(서하)|인종]] 시기에 한림학사원(翰林學士院)을 설치하고 [[실록]]을 편찬하게 했으며 1225년에는 나세창(羅世昌)이라는 신하가 관직을 그만둔 후 《하국세차》(夏國世次)라는 역사서를 저술한 바 있다. 하지만 모두 현존하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칭기즈 칸의 유언에 의해 자행된 서하인 대학살 기록이나, 옛 서하의 강역 내에 남아 있는 황폐화된 유적들을 보아 종합해보면, 전쟁과 방화 등의 난리로 인해서 사서들이 모두 유실됐을 가능성이 있다. 현존 사서가 없기 때문에 서하의 역사에 대해서 서하인들이 남긴 '''서하문자'''로 기록된 편지, 비문, 문집 등을 활용하거나 송나라에서 남긴 기록, 몽골인들이 남긴 기록 등을 참고하여 연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서하의 역사나 문화를 연구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대표적으로 서하 역사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 부분은 《[[송사]]》 <하국전>(夏國傳)이 있다. 그 외 《[[요사]]》와 《[[금사]]》에 서하에 대한 기록들을 남긴 게 전부인데 전기 서하의 기록은 요사에 많고, 후기 서하의 기록은 금사에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