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석수철 (문단 편집) == 지도자 경력 == 성균관대에서 코치로 새롭게 야구 인생을 시작하며 성균관대를 강팀으로 바꿔놓으며 많은 인재들을 길러냈다.[* 성균관대 감독은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에서 활약하기도 했던 이연수. 쌍방울이 해체하고 은퇴를 선언하여 모교인 성균관대 감독을 2001년부터 현재까지도 맡고 있다. 인터뷰에 따르면, 이연수 감독 밑에서 보고 배운 것이 많다고 전해진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김태완(1984)|김태완]], [[모창민]][* 대학교 시절 활약으로 [[단국대학교|단국대]] [[나지완]]과 함께 대졸 최대어였다.], [[이상훈(1987)|이상훈]][* 프로에서는 그저 그런 성적이었지만, 드래프트 당시에 대졸 타자 최대어였다.], [[정재훈(1980)|정재훈]][* 휘문고 시절까지 유격수로 활약하여 [[OB 베어스]]의 지명을 받게 되었으나, 정재훈 본인은 대학교 진학을 희망했다. 다른 대학교에서는 유격수로 키우겠다고 했는데 성균관대에서는 투수로 기르겠다고 선언하여 결국 정재훈 본인의 선택으로 성균관대에 입학하게 된다. 졸업한 후 [[두산 베어스]]에서 중간계투와 마무리로 큰 활약을 하게 된다.]이 있다. 국가대표 코치로도 선발되어 [[야구 월드컵]], 세계대학야구선수권대회 등 여러 국가대표 대회에서 코치로 차출되기도 했다. 그러던 2011년, 모교인 군산상고의 요청으로 군산상고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그가 부임하기 전까지 군산상고는 8년 동안 감독이 7번이나 바뀌며 팀 분위기가 많이 안좋았는데 그가 부임하고 나서 2년 만에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과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우승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야구 인재들이 수도권으로 전학을 가면서 인재 유출이 심해졌고,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2016년에 다시 봉황대기 결승에 진출했으나 [[휘문고등학교 야구부|휘문고]]에게 끝내 패하였다.[* 이때 휘문고 선수들의 설레발로 인해 주자가 홈을 밟지도 않았는데 선수들이 다 뛰어나가 축하를 해주다가 3루주자와 벤치의 4번선수가 충돌하며 이걸 본 석수철 감독이 필사의 항의를 하며 3루주자를 아웃처리 시켜 끝내기를 무효로 돌렸다. 아쉽게도 재차 끝내기를 당했지만. [[https://youtu.be/LzZoeZKLHV4|해당 영상]] ] 하지만 그 해 열린 전국체전에서 [[세광고등학교 야구부|세광고]]를 물리치며 2013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우승을 일궈냈다. 군산상고 감독으로 부임한 후에도 실력을 인정받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등 굵직한 대회에서 국가대표 코치를 맡고 있다. 그러나 [[2018년]] [[7월 4일]], [[영선고등학교 야구부|고창영선고]]와의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 예선전에서 '''[[승부조작]]이 의심되는 졸전 끝에 0-4 참패'''했고, 이로 인해 본선 직행이 불투명해진 [[전주고등학교 야구부]] 측이 [[대한체육회]],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등 유관단체에 조사를 의뢰하면서 지도자 생활 20년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7/14/0200000000AKR20180714040300055.HTML?input=1179m|최대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2022년 7월 3일 열린 주말리그 후반기 세광고전에서 발생한 판정 시비 건으로 몰수게임 패배가 선언된 뒤 자격 정지 조치를 받아 한동안 감독직을 수행하지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