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석촌동 (문단 편집) == 역사 == 석촌동은 백제초기 적석총이 무너져 내린 돌이 많이 흩어져서 돌마리라고 지칭한 후 한자로 표기한 지명이다. 석촌동은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에 속했는데 그 뒤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행정개편을 하면서 중대면 석촌리로 명명했다. 1963년 성동구에 편입되어 석촌동으로 승격되었고 1975년에 강남구, 1979년에 강동구, 1988년에 비로소 송파구 관할이 되었다. 198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택지가 개발되었는데 당시에는 각 골목마다 벽돌공장, 보도블럭 공장이 노상에서 운영되었다. 즉, 그냥 빈 땅 위에 각종 설비를 갖다놓고 그 자리에서 땅을 파서 벽돌이나 보도블럭을 생산했다. -- 진정한 석촌! -- 1980년대 중반까지도 판자촌이 남아 있었으나 [[1988 서울 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거의 사라졌다. 석촌동에 있는 [[석촌동 고분군]][* 당시 불리던 백제고분, 백제고분로라는 이름은 여기서 왔다.]은 1917년 조사 당시 280개가 넘는 무덤이 있었으나 이후 석촌동 주민들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다. 1987년에 와서야 고분 위에 있던 민가(...)를 허물고 본격적으로 공원으로 공사를 시작하였다. 원래는 고분 위로 길이 나 있었으나 이 때부터 지하차도가 뚫리기 전까지는 남, 북으로 크게 ㄷ자로 돌아가야 했다. 석촌호수 근처를 산보하다 보면 [[삼전도비]]를 가져다 놓은 장소가 있다. 삼전도비는 [[청태종]]이 [[인조]]의 항복을 받아낸 뒤 전승비로 세운 것으로, 몽골어, 만주어, 한문으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원래 위치에 있다가 이리 저리 옮겨다니다 다시 원래 위치에 설치된 것.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