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선봉구역 (문단 편집) == 역사 == 굴포리 유적에서 [[온돌]] 구조를 갖춘 [[신석기 시대]] 분묘지가 발견된 것을 보아 인류 거주의 역사가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역사 시대 이후 전근대에는 한미한 어촌이었다. 1931년 이전까지 [[경흥군]]의 웅기면이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이후 1921년에 웅기항이 개항되었고 1923년에 경흥군청이 경흥동에서 웅기면으로 이전하였으며 1931년에 웅기면이 웅기읍으로 승격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청진항]]과 함께 웅기항이 유력한 종단항(終端港) 후보지였으나 결국 나진항이 종단항으로 선정되었다.[* 이 때 웅기 지역과 나진 지역의 지역갈등이 잠시 있었다고 한다.] 비록 웅기항이 종단항으로 선정되지 못했지만 [[라진구역|나진]]과 가깝다는 이점으로 인해 웅기도 간접적인 혜택을 누렸다. 종단항으로 선정되기 전의 나진은 변변한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한미한 어촌이었던 탓에 나진에 투자하려고 했던 투자가들이 주로 웅기에서 부동산 거래를 했다. 그리고 나진은 개발 부지가 협소한 탓에 나진이 발전하면 웅기로 시가지 확장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1952년]] [[12월]] [[군면리 대폐합]]의 일환으로 [[은덕군|경흥]]군에서 웅기읍을 중심으로 한 일부 지역이 떨어져나와서 '''웅기군'''('''雄基郡'''/Unggi County)이라고 불리다가 [[1967년]] [[나진시]]와도 통합과 분리를 거치다 훗날 선봉군으로 개칭되었다. 이는 소련군이 한반도에 진주할 때 인민군이 같이 들어왔는데,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이 현재의 웅기읍이라서 1952년 군면리 대폐합 당시 만들었던 웅기군을 [[1981년]] [[10월 22일]] [[선봉군]](先鋒, '''선봉장군'''할 때 그 선봉 맞음)으로 개칭한 것이다. 1993년 9월 라진시 일부[* 관해동, 방진동, 낙산동, 나진동, 삼해동, 노창동, 나석동, 무창리, 서리를 [[청진시]]로 이관]와 선봉군이 통합하여 '라진-선봉시'가 되면서 직할시가 되었다.[* 라진-선봉이 공식 명칭이고 라선은 이 당시에는 비공식적인 준칭이었다.] 2000년 8월 라진-선봉시가 라선직할시로 개편되면서 라진구역과 선봉군을 폐지하였고, 이 때 구 선봉군의 선봉읍을 상현동, 중현동, 하현동, 송평동으로, 두만강로동자구를 두만강동으로, 웅상로동자구를 웅상동으로 개편하면서 구 선봉군은 형체도 없어지고 단지 라선시 내의 각종 기관·기업소 명칭으로만 남았다. [[위키피디아]]를 비롯해 많은 곳에서 라진구역과 선봉구역이 2010년 라선시 승격과 동시에 분리된 것으로 적고 있지만~~죄다 위키피디아 복붙이니까~~ [[KBS]]의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754871&ref=A|기사]]를 보면 구역 분리는 2012년 9월로 보인다. 다만 북한 쪽 문헌에서 직접적으로 선봉지구가 언급되는 것은 2013년 6월 3일의 내나라 보도이며, 10월 23일 조선중앙TV 기사에 따르면 구 우암리가 우암동으로 승격되어있다.[* 여담이지만 이전 버전에서 선봉구역이 아닌 선봉군 설치를 확신한 근거가 2007년에 나온 주택지도기술단의 북한지도인데, 이 책은 북한 쪽 업계에서는 대략 '''그냥 한 번 만들어봤다는 데 의의가 있는 물건''' 취급 받는 책이니 어지간하면 근거자료로 삼지 않는 것을 권한다. 애초에 북한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축적되지 않은 시절에 만들어진데다가 연구책임자가 [[겜알못|북알못]]이라 이 책의 오류를 잡아내자면 끝도 한도 없다.] 다만 2013년 당시 내나라의 보도에서 쓰인 '선봉지구'가 행정구역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북한은 '안주지구', '순천지구', '개천지구', '구장지구', '북창지구'와 같이 일반시·군명에도 지구를 붙이는 일이 매우 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 행정구역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3월 22일 로동신문 기사가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라선시 선봉지구'''에 사는 리명진,안주시의 송선응,재령군의 허운학이 창작하여 보내온 작품들을 비롯하여 많은 작품들에도 뜨겁게 어려있었다." -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가는 충정의 마음", 로동신문, 2015년 3월 22일.] 북한 관영매체들은 2013년 6월 3일부터 2015년 10월 8일까지 총 9차례에 걸쳐 선봉을 '''선봉지구'''로 언급하고 있다. 특히 라진의 경우 '라진시'라고 언급되는 기사가 2013년 9월 22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도 확인되고, '라진지구'라고 표기된 기사는 2014년 1월 23일 조선중앙통신 보도가 처음이므로 '라진지구'로 변경된 것이 선봉보다 다소 늦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위에 언급됐다시피 선봉구역 최초 사용 시점을 2015년 3월로 잡는다면 오히려 라진지구가 먼저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후 2020년 11월 30일 라선시 큰물피해복구 소식 보도를 시작으로 라선시 '''선봉구역'''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으며 그에 앞선 11월 27일에는 '''라진구역''' 또한 언급됨에 따라 라선시의 지구들이 2020년 하반기 들어 구역 체제로 전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11월 28일자 로동신문 기사에서 "지난 10월 216사단 922건설려단 라선시련대 '''라진구역'''대대에서 양수장건설에 필요한 집수정을 만들 때였다."라는 기록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구역으로의 전환은 2020년 10월인 것으로 보인다.[* '라진지구'나 '선봉지구'가 등장한 마지막 기사는 각각 2020년 9월 21일과 27일이었다. 이런 점을 볼 때 10월에 전환된 것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북한의 매체는 행정구역이 변경되었을 경우 과거의 이야기를 다룰 때 과거의 행정구역을 쓰되, '''라진지구 백학동(당시)'''와 같이 (당시)를 넣어 사용한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