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선우(성씨) (문단 편집) === 개요 === 鮮于. 본관은 태원(太原) 단본이다. 태원이 어딘지에 대해서는 [[중국]] [[산시성(산서성)]] [[타이위안시]], [[한국]]의 [[평양시]], [[충청북도]] [[충주시]]의 세 가지 설이 있다.[* 다만 선우씨의 기원으로 기록된 상나라 왕족이 통치한 [[춘추전국시대]]의 나라 [[중산]]이 멸망한 후, 그 유민들이 산서성 태원으로 옮겨졌다는 정사 기록이 있다.] 《행주기씨보(幸州奇氏譜)》와 《청주한씨세보(淸州韓氏世譜》에 따르면 시조는 [[기자조선]]을 창건했던 [[상나라]]의 왕족 [[기자(중국)|기자]][* 현재 역사학계는 기자조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지만, 고고학이 발달되기 전에는 반박할 만한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정설로 통했었다.]의 48대손 우평(友平)이다. [[고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마한]] [[건마국]][* 현대에는 고고학의 발달로 준왕 집단이 남하하여 세운 나라가 마한 소국들 중 [[목지국]]이 아닌 건마국이라는 게 증명되었다.]의 초대 왕이었던 기자의 40대손 [[준왕]]의 후손인 기자의 47대손 마한 8대 원왕(元王) 훈(勳)에게는 아들로 우성(友誠), 우평(友平), 우량(友諒)의 3형제가 있었는데, 우성은 [[백제]]로 가 [[행주 기씨]](幸州 奇氏), 우평은 [[고구려]]로 가 태원 선우씨(太原 鮮于氏), 우량은 [[신라]]로 가 [[청주 한씨]](淸州 韓氏)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태원선우씨세보(太原鮮于氏世譜)》에 의하면 내용이 조금 달라 기자의 아들 선우송(鮮于松)이 시조가 된다. 기자의 맏아들인 2대 장혜왕(莊惠王) 송(松)은 즉위하면서 동생인 중(仲)을 [[우산국]]에 봉하였는데, 이에 기자가 [[식읍]](食邑)을 하사받았던 땅인 태원(太原)을 본관으로, 조선의 선(鮮) 자와 우산국의 우(于) 자를 따서 선우씨(鮮于氏)를 성씨로 삼았다고 한다. 즉 기자의 아들 때부터 이미 선우씨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른 족보들에도 등장한 인물과 동일인인 기자의 47대손 마한 8대 원왕 선우훈(鮮于勳)의 아들인 기자의 48대손 선우량(鮮于諒)은 백제에게 마한이 멸망당하자 [[평안남도]] [[용강군]] 오석산(烏石山)으로 들어가 성을 쌓고 황룡국(黃龍國)을 건국했다. 그러다 선우량의 10세손 선우병(鮮于柄) 대에 고구려에게 황룡국이 멸망하여 선우씨는 서민(庶民)이 되었다 한다. 황룡국은 고구려 [[해명태자]]의 일화에 등장하는 나라이다. [[https://blog.naver.com/yc8663/221073348784|이에 대한 고찰]]. 그 이후로는 세계가 실전되었기 때문에 [[고려]] [[고종(고려)|고종]] 때 [[중서문하성]]의 관리인 종7품 중서주서(中書注書)를 지낸 '''선우정(鮮于靖)'''을 1세조로 한다. 즉 분명한 세계가 이어지는 사실상의 시조는 선우정이다. 한국사에서 가장 오래된 선우씨의 역사상 기록으로는 238년 [[삼국시대(중국)]] [[위(삼국시대)]]의 황제 [[조예]]에 의해 낙랑태수에 임명되어 대방태수에 임명된 [[유흔]]과 함께 몰래 바다를 건너 [[동연]]의 [[낙랑군]]을 점령한 [[선우사]](鮮于嗣)의 기록이 있다.[* 중국측 기록에도 선우씨는 기자의 후예로 기록되어 있는 한편, 선우씨의 동래에 대해 정사와 교차검증을 시켜주는 이 기사 또한 있기 때문에 선우씨는 정말로 기자의 후예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게다가 선우사는 현 평양 일대를 지배한 낙랑태수를 역임했으며 이후의 선우씨도 주로 관서지방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다는 점도 있다. 반면 기자의 후예를 자처하는 다른 성씨들은 반드시 준왕을 매개로 해야 하는데 애초에 기자가 고조선에 동래했다는 고고학적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준왕이 과연 기자의 후예인지도 증명되지 않았다. 고조선 왕실 기자 후예설에 대해서는 현재 고조선 측에서 직접 입장을 나타낸 사료는 전해지지 않고 있는데 현 사학계에선 중국 측에서 쉬운 이해를 위해 이민족도 중국인의 후예라 마음대로 적었거나 중원 정세에 개입하기 위해 고조선 왕실에서 자칭했다는 설 등이 거론되고 있다.] [[고구려]] 초기 기록에 우(于)씨 왕후로 우소(于素)의 딸이자 [[고국천왕]]과 [[산상왕]]의 [[왕후 우씨]]와 우수(于漱)의 딸이자 [[서천왕]]의 [[왕후 우씨(서천왕)]]의 2명이 등장하는데 여기서의 우씨가 선우씨의 축약형이란 가설이 있다. 실제로 이후에도 1자 성으로 쓸 때는 그렇게 축약했던 용례가 있기 때문. 다만 아직 성씨의 사용이 일반화되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에 실제로 우가 이름의 일부가 아닌 성씨였다는 가정 하에서 그러하다. 집성촌은 대부분 [[평안도|관서]] 지방에 있다. 1930년도 국세조사에 의하면 당시 1,226가구 중 770가구가 [[평안북도]]에, 258가구가 [[평안남도]]에 집중 분포되어 있었으므로 현재 남한 지역에 있는 선우씨는 대다수가 관서 지방에서 남하해 온 사람들과 그 후손이다. 2015년 기준 3,588명으로 집계되었다. 남한에는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집성촌이 딱 하나 있다.[* 다만 이 집성촌도 6.25 이후 피난민에 의해 생긴 집성촌이다.] 이 성씨를 쓰는 유명인 중에 '[[선우용여]]'[* 예명이며 본명으로는 선우씨가 아니다. 본명은 정용례이다.], [[선우은숙]], [[선우재덕]]이라는 연기자, [[선우정아]]라는 가수가 있기 때문에, [[복성]] 중에서는 [[남궁(성씨)|남궁]], [[황보]]씨와 함께 그나마 어느 정도 일반인에게도 알려진 편이다. 가장 일반적인 로마자 표기는 Sunwoo이다. [[2011년]] [[외교부]] [[여권]] 통계에 따르면 Sunwoo가 약 75%, Seonwoo가 약 19%, Seonu가 약 3%, Sonu가 약 2%, Sunoo 등 다른 표기는 1% 미만이다. 참고로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표기는 Seonu,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따른 표기는 Sŏnu이다. 같은 복성인 황보씨처럼 한자가 다른 [[선(성씨)|선(宣)씨]]와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