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선천군 (문단 편집) == 역사 == [[고려시대]] [[제1차 여요전쟁]] 때 [[서희]]의 외교담판으로 얻어낸 [[강동 6주]] 중 통주(通州)가 바로 선천이다. 1020년 선주(宣州)로 개칭되었으며, 여몽전쟁 시기에는 30년간 [[영종도]]에 들어가 있다가 1261년 출륙하였다. 조선 태종 때인 1413년 고을 이름의 주(州)를 천(川)이나 산(山)으로 바꾸면서 선천부(宣川府)가 됐으며, 선천부사는 [[명청교체기]]때 명나라와 청나라의 동향을 보고하는 외교,국방의 중요한 자리였다. 특히 [[모문룡]]이 [[가도]]를 점거하고 행패를 부릴 때 대응을 하는 주요 장소도 선천이었다. 후대에 들어선 [[김삿갓]]의 할아버지 [[김익순]]이 여기 부사로 있었다. 1895년 선천군으로 고쳤다. 1914년 곽산군이 폐지되면서 1개 면이 편입되었다. 광복 전에는 [[평양시|평양]] 이상으로 [[개신교]]세가 강한 곳이었다. 현재 남한에서 개신교 신자 비중이 가장 높은 시군구의 경우 신자 비율이 인구의 30%를 좀 넘는데 당시 선천군은 주민의 절반 가까이가 개신교 신자였다고 한다.[[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09746|#]] 그래서 일각에서는 "조선의 [[예루살렘]]"이 평양이 아닌 선천이라는 주장도 있을 정도이며, 지금의 북한에서도 선천은 "[[기도(종교)|고개 숙인]] 선천"으로 통한다고 한다. 현재 서울 용산구에 있는 [[보성여자고등학교]]는 원래 선천군에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