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선통제 (문단 편집) === 즉위와 퇴위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80px-PuYi_1909.jpg]] 아버지 순친왕과 선통제(사진 오른쪽에 서 있는 어린이) [[청나라]]의 11대 황제였던 [[광서제]]의 이복 동생인 [[순친왕]](醇親王, [[1883년]] ~ [[1951년]]) 아이신기오로 짜이펑(愛新覺羅 載豊)과 구왈기야 여우란(瓜爾佳 幼蘭)의 아들로 태어났다. 큰아버지이자 진외당고모부인 광서제가 후사를 남기지 못한 채 죽자 [[서태후]]에 의해 '''3살'''의 어린 나이에 황제에 올랐다. 아버지 순친왕이 아닌 어린 푸이가 즉위한 이유는, 당시 계승법상 황제는 하나의 항렬에 1명만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 순친왕은 형인 광서제와 같은 항렬이라서 황제가 될 수 없었다. 당장 전대의 광서제부터가 본래는 동치제의 사촌동생이라서 황제가 될 수는 없었으나 광서제의 모친이 서태후의 여동생이라 혈연으로 가까웠기에 서태후가 억지로 옹립한 형태였다.[* 정확히는 동치제의 아랫항렬에 해당하는 황족들이 혈연상으로 동치제와 9촌 이상 되는 먼 황족이라 차선책으로 동치제의 사촌형제 중에서 고르게 되었는데, 동치제의 사촌형제 중에서는 서열상으로나 나이로나 서태후의 라이벌이었던 [[공친왕]] 혁흔의 자녀들이 가장 적합했으나 공친왕의 세력 강화를 용인할 수 없던 서태후가 이들을 제치고 어린 광서제를 지목하였다.] 정작 큰할머니인 서태후는 광서제가 세상을 떠난 다음 날 사망했기 때문에, 광서제의 황후인 [[효정경황후]] 예허나라씨(孝定景皇后 葉赫那拉氏)가 융유황태후(隆裕皇太后)로서 선통제의 아버지인 순친왕과 함께 섭정을 맡았다. 여담으로 어린 나이인 선통제가 긴 즉위식을 지루해하며 칭얼거리자 그를 품에 안고 있던 순친왕이 "울지 마십시오, 울지 마십시오, 곧 끝납니다, 곧 끝나요(別哭別哭、快完了、快完了)!"라고 달랬다고 한다.[* 마지막 황제에서도 이 일화가 재현되는데, It will soon be over로 번역되었다.] 그런데 이건 "[[청나라]]가 곧 망한다(快亡)"는 말과 발음이 비슷했는데[* 전자는 '콰이완', 후자는 '콰이왕'으로 들린다. 성조도 2성으로 같다. 본문에도 나오듯이 '행사가 곧 끝난다'와 '청나라가 곧 끝난다'라는 식으로 마침 한국어 번역으로도 얼추 비슷한 표현이 가능하다. ], 그 말대로 그의 재위는 오래가지 못했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위안스카이]]가 푸이의 퇴위를 압박하자, [[1912년]] 2월 12일 융유황태후가 선통제의 퇴위 조서를 반포하면서 폐위되고 만다. 이후 민국과의 협정 내용대로 외국 황제의 예우를 받으며 궁전인 [[자금성]] 안에서 [[청나라 소조정]]의 황제로서 지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