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선통제 (문단 편집) === 일본의 꼭두각시 === || [[파일:external/images.china.cn/00016c8b41770d0bcc2859.jpg|width=100%]] || || 1934년 3월 타임지 표지를 장식한 푸이 || || [include(틀:navervid, vid=0E57DE85C053B0A30B4BB915120ECAA4C9CF&outKey=V121029626232c057a39866fb526a2c868b1eed06586c38b3370266fb526a2c868b1e)] || ||'''[다큐] 영상의 세기 PREMIUM 제06부 - 아시아.자유를 향한 투쟁中'''[* 2017년 8월 19일 방영. 영상의 44분 15초쯤에 푸이의 [[도쿄재판]] 모습이 따로 나온다.] || 만주국 선포 과정에서 [[장징후이]] 등은 [[짱스이]]를 [[만주국]]의 수령으로 내세워 공화국을 세우자고 주장했고 황족인 [[아이신기오로 시치아]]는 자신이 황제가 되고 싶어했다. 반면에 산동성의 [[쿵더청]]을 데려와서 황제로 옹립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결국 선통제의 덕성을 시험하기 위해 먼저 집정에 취임시키자고 결정됨에 따라 [[1932년]] 3월 1일 [[만주국]]의 집정(執政, 최고 통치자)이 되었다가 [[1934년]]부터 군주가 되었다. 물론 철저한 [[일본 제국]]의 [[꼭두각시]]였다. 한 예로 선통제 개인은 전통적인 청나라 황실 출신답게 [[티베트 불교]] 신자였음에도[* [[유교]]를 국교로 삼은 한족 왕조들과는 달리 유목민 왕조의 특징이었다. 청 황제들은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를 스승으로 모셨다. 다만 푸이는 특히나 독실하게 불교를 믿어 명상을 자주 했고, [[채식주의자]]였으며, 시종들에게도 채식을 하기를 요구했다. 역설적이게도 음식에 벌레가 들어가면 시종에게 [[태형]]을 내렸다고 하며, 평소 미신을 신봉해서 점괘가 불길하게 나오면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중얼거리며 예배를 보곤 했다. 이를 보면 자비심을 실천하기 위해서보다는 그냥 자기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 불교를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소련이 참전해서 만주국에 폭격을 가할 때도 푸이는 불상에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하필 불당 바로 옆의 [[관동군]] 병영에 폭탄이 떨어졌다고 한다.] 일본의 강압으로 [[신토]]가 만주국의 공식 [[국교]]가 되었다. 다른 예로 [[도쿄]]에 가서 [[쇼와 덴노]]를 만났을 때는 날씨가 맑은 것도 [[천황]] 덕분이라는 식의 찬양도 했다는 기록도 있다. 물론 의전상으로는 만주국은 일본의 가장 친한 우방으로서 의전 역시 일본 천황 다음이었다. 일부 묘사처럼 일제에게 대놓고 핍박을 당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실질적으로 푸이는 꼭두각시였고, 그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실제로 푸이는 [[전범 재판]] 당시 증인으로 출석하여 이 사실을 그대로 밝힌 바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