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설거정 (문단 편집) === 후진 시기 === 후당이 멸망하고 후진이 들어선 뒤, 설거정은 유수응(劉遂凝)의 벽소를 받아 유수응의 종사(從事)가 되었다. 유수응의 형인 유수청(劉遂淸)이 국가의 재정을 관리하면서 설거정을 염철순관(鹽鐵巡官)으로 삼도록 상주하여 설거정은 염철순관이 되었다가, 개운 원년(944년)에는 탁지추관(度支推官)이 되었다. 재상 이숭(李崧)이 염철(鹽鐵)에 대한 사무를 겸임하면서 다시 추관으로 삼도록 주청하였으며, 대리시직(大理寺直)이 더해졌고 우습유(右拾遺)로 승진하였다. 또한 상유한이 개봉부윤(開封府尹)으로 재임할 때 다시 설거정을 판관으로 삼도록 주청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