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설거정 (문단 편집) === 북송 시기 === 960년, 조광윤이 후주의 마지막 황제인 [[시종훈]]으로부터 선양을 받고 [[북송]]을 건국하여 황제로 즉위하니, 이가 북송의 초대 황제인 [[태조(송)|태조]]이다. 북송이 건국된 뒤, 설거정은 호부시랑으로 임명되었다. 태조가 [[이균]]과 [[이중진]]을 정벌할 때, 설거정은 수도에 남아서 정무를 맡았으며, 얼마 안 있어 지허주(知許州)를 맡았다. 설거정은 962년에 입조하여 추밀직학사(樞密直學士)를 맡았으며, 임시로 공거를 담당한다. 967년, 이부시랑이 더해졌다. 972년, 설거정은 감수국사가 되어 오대사를 편찬하라는 칙령을 받들어 [[구오대사]]를 편찬하였고 1년 만에 완성한다. 973년, 문하시랑, 평장사(平章事)로 임명되었다. 976년 태조가 죽고 [[태종(송)|태종]]이 즉위한 뒤, 설거정은 좌복야와 소문관대학사가 더해졌고, 979년에 태종을 따라 [[북한(오대십국시대)|북한]]을 정벌한 뒤에는 사공이 되었다. 981년 설거정은 단사(丹砂)를 복용하다가 병에 걸렸고, 정사에 대한 의견을 상주할 때 자신이 병에 걸렸음을 깨닫고 갑자기 조당을 빠져나온다. 조당을 빠져나온 설거정은 물을 마신 뒤에 관리의 부축을 받고 중서성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말을 할 수 없었고 단지 저수기를 가리키며 물을 가져와달라고 부탁한다. 주변의 사람들이 물을 가져왔지만 설거정은 물을 마시지 못하고 쓰러졌으며, 연기를 뱉은 끝에 결국 가마를 타고 자택으로 돌아갔는데, 곧바로 사망하였다. 태종은 설거정의 비보를 듣고 슬퍼하여 3일 동안 폐조하였고 설거정에게 태위, 중서령을 추증하였으며, 문혜(文惠)라는 시호를 내렸다. [[분류:송나라/인물]][[분류:중국의 역사가]][[분류:카이펑시 출신 인물]][[분류:912년 출생]][[분류:981년 사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