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설계두 (문단 편집) == 생애 == [[신라]] [[6두품]] 출신이다.[* 실제로 같은 설씨로 추측되는 [[원효]]와 [[설총]]도 6두품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설계두 본인이 아예 후술할 언급을 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 [[신라]]에서는 사람을 등용하는데 골품을 따진다. 때문에 진실로 그 족속이 아니면 비록 큰 재주와 뛰어난 공이 있더라도 넘을 수가 없다. > ---- > <[[삼국사기]]> 열전 제7 설계두전 中 어느 날 친구 4명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각자 자신의 뜻을 이야기하는데, 설계두는 [[골품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중국에 유학해 공을 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621년에 배를 통해 밀항하여 당나라에 발을 들였으며, 645년에 [[태종(당)|당 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하자 스스로를 천거해 좌무위과의가 되었다. 이후 [[주필산 전투]]에서 적진에 깊숙이 들어가 싸우다가 전사했다. 이에 당태종이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 나라 사람도 죽음이 두려워 뒤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지만 외국인으로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을 무엇으로 그의 공을 갚겠냐고 했다. 당태종이 종자에게 설계두의 소원을 듣고 어의를 벗어 덮어주었으며, 설계두를 대장군의 관직에 제수하고 예를 갖추어 장사를 지냈다.[* 이때 살아남아 공을 세워서 출세한 또다른 설가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설인귀]]. 물론 설인귀는 수백년 전 [[여포]] 부하였던 [[설란]]의 후손으로, 대대로 [[한족]]이라 신라와는 관계가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