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설렁탕 (문단 편집) == 개요 == >만찬, 만찬, 만찬이라고 별다른 게 있나요. >돈 버리고, 속 버리는 [[양주(술)|양주]]보단 [[막걸리]]가 좋고, (좋고!) >설렁탕 한 그릇에 [[김치]]를 놓으면, >배불리 먹고, [[숙취|술기운]]도 낫고, 만찬이 아니겠소. >상다리 부러지도록 차리지 마시오. >상다리 부러지면은 나는 못 고친다. >---- >- Y 아무도 못말려 - [[https://youtu.be/2ozmtSxwk3g?si=cwIG01Pj8ZjCU1mX|설렁탕]] > 소의 머리, 내장, 뼈다귀, 발, 도가니 따위를 푹 삶아서 만든 국. 또는 그 국에 밥을 만 음식. >---- >- 표준국어대사전[[https://stdict.korean.go.kr/m/search/searchView.do?searchKeyword=%EC%84%A4%EB%A0%81%ED%83%95|#]] [[소]]의 여러 부위를 넣고 끓여내 밥과 함께 내놓는 [[국(요리)|국]]이다. [[서울특별시]]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이다. [[사골]]과 [[도가니]]를 위주로 [[양지(쇠고기)|양지]]를 주로 국거리로 쓰며, 10시간 정도 가열하면 고기와 뼛속에 있는 성분이 흘러나와 국이 유백색을 띠게 된다. 삶은 소면[* 원래 설렁탕에는 [[소면]]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1970년대 만성적인 [[쌀]] 부족 현상 때문에 [[혼분식 장려 운동]]을 하던 시절에 비교적 가격이 싼 [[밀가루]] 음식을 넣었다고 한다.]을 같이 넣기도 한다. 식당에 따라서 다르지만, 처음부터 밥을 탕에 말아서 내놓기도 한다. 이것을 [[토렴]]이라고 하는데 밥에 국물을 부었다가 따라내는 것을 몇 번 반복해서 밥을 따스하게 데우고 간을 배게 하는 것이다. 파를 자주 띄우는데, 이유는 고기 특유의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한다. 특히 전통식으로 하는 설렁탕집에 가면 누린내 때문에 먹기 다소 거북한 경우도 있다. 가격대가 약간 애매하다. 대개 한 그릇에 8천 ~ 1만 2천 원, 특([[곱빼기]])은 2천 원 정도 추가한 가격대이다. 설렁탕 전문점에 가면 기본적으로 만 원 이상 하기 때문에 직장인들이 부담없이 점심메뉴로 고를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서민적인 느낌을 유지하고 있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가파른 물가상승으로 [[순대국밥]]이나 [[뼈해장국]] 한 그릇이 8천원에 육박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소고기와 부산물로 끓인 설렁탕이 비싸다고 하기엔 애매하다. 특별히 튀는 구석이 없지만 지나가다 생각나면 한 그릇 정도 먹어볼 법하고, 일반 가정집에서 요리하기에는 부담스러우며[* 탕을 우려내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그러다보니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여러가지 재료가 들어가다보니 일반 냄비로는 어림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개성이 없어서 특출나게 잘하는 집을 지목하기도 힘든 데다 여러 꼼수를 사용하기에도 좋으므로, 곳곳에 많은 설렁탕 전문점들이 있다. 매우 비싼 값을 받는 설렁탕도 있고, 상상 이상의 낮은 수준을 보여주는 설렁탕을 파는 가게도 종종 있으니 주의를 필요로 한다. 특히 유동인구(뜨내기 손님)가 많은 지역의 설렁탕 가게 중에는 인스턴트 설렁탕 가루조차 아낀 멀건 국물을 설렁탕이라고 팔아먹는 곳도 있다. 노인들이 좋아하고 약간 점잖게 뜨끈한 국물 한 숟갈 먹고 싶을 때 먹는 음식이지만, 의외로 1920년대에는 편하게 먹는 [[패스트푸드]]라는 인식에 가까워서 점잖은 중년층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체면 때문에 눈치를 보며 몰래 시켜 먹었다. 심지어 [[일본인]] 관리들까지도 그랬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철폐되고 조선이 망했지만 오래토록 이어온 신분제 인식은 여전했다. 설렁탕 사업은 주로 [[소]]를 잡던 [[백정]]과 [[옹기]]를 만들던 토기장이들이 협업하여 생겼는데, 두 직업 모두 [[조선]] 시대 때는 천한 사람들이니[* 특히 백정의 경우 일제강점기에도 형평운동을 통해 처우 개선을 요구하였다.] [[양반]] 출신이든지 졸부든지 관계없이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드나들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현대의 [[짜장면]]처럼 배달시켜 먹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시켜 먹었던 것을 보면 맛있긴 맛있었나보다. 현대에서도 [[대기업]] 간부를 위시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치킨]]이나 [[피자]]를 손에 들고 뜯어먹기 어려운 것을 생각하면 된다. 특히나 이런 현상은 1929년 별건곤이라는 잡지에 기고된 글에도 나온다. 제목이 '''괄세 못할 경성(京城) 설넝탕'''이라는 점만 봐도, 설렁탕을 그 당시 먹는 것은 다들 어느 정도 백안시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