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설종진 (문단 편집) === [[현대 유니콘스]] === [[파일:현대시절 설종진.jpg]] [[현대 유니콘스]] 현역 시절의 설종진.[* 등번호는 40번이였다.] 하지만 아마추어 시절만큼의 명성을 떨치지 못했다. 중앙대 시절에 부상을 극복하고 다시 경기를 뛰었을 때에도 예전만큼의 기량을 보여 주지 못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부상 후유증 때문인지 조금만 빨리 뛰어도 다리에 자꾸 쥐가 나고 말았고, 러닝이 안 되니까 순발력이 떨어졌다. 배트 스피드도 나오지 않고, 수비 범위도 확 줄어들었다. [[김재박]] 감독이 “설종진이 1군에서 뛰려면 기습번트도 댈 줄 알아야 한다”고 얘기해 매 경기마다 두 타석씩 좌우로 번트를 대던 도중, 손가락에 공을 맞아 부상으로 반년 동안 허송세월로 보내기도 하였다. 1996년 12월 [[박찬호]]와 함께 제주여행을 갔다. 프로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하며 조금씩 잊혀진 선수가 되어 가던 설종진은 1997년에 투수로 전향하게 된다. [[스프링캠프]]에서 외야 송구훈련을 하던 도중 설종진의 레이저 송구를 인상깊게 지켜본 [[신언호]] 코치가 투수 전향을 제안했고, 설종진 역시 투수로 재기할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해 이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http://news.joins.com/article/3520411|'비운의 야구천재' 설종진 재기…다리화상 딛고 투수 변신 성공]] 1998년 시즌 1,500만원으로 연봉 재계약하여 시범경기 때 잘 던진 신인 [[김수경(야구)|김수경]]과 비롯해 [[조웅천]], [[안병원]] 등 중간계투진이 두터워져 이루어졌다. 하지만 최고 구속이 140km/h도 넘지 못했던 설종진은 많은 기회를 받지 못했고, [[장민석|장기영]], [[노환수]] 등 좌완 투수들이 입단하면서 조용히 선수 생활을 정리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