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궤 (문단 편집) == 성궤의 행방은? == 히브리어 성경에서 성궤가 마지막으로 언급된 부분은 역대하 35장 3절로, [[요시야]](기원전 641~ 기원전 609) 왕 재위기의 내용이다. 해당구절[* 또 여호와 앞에 구별되어서 온 이스라엘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에게 이르되 거룩한 궤를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건축한 전 가운데 두고 다시는 너희 어깨에 메지 말고 마땅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섬길 것이라]로 볼 때, 한동안 혹은 꽤 오랫동안 성전 지성소가 아닌 다른 곳을 옮겨다녔던 듯하다.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예루살렘을 공략하면서 대성전을 파괴했는데, 이때 성궤 또한 파괴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주장이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상징물인지라 제사장들이 어딘가로 숨기거나 옮겼으리라는 주장 또한 아주 오래 전부터 널리 퍼졌다. 제2경전 [[마카베오기]] 하권에 따르면, 예언자 [[예레미야]]가 성궤를 어느 산 속 동굴에 숨겨두었다는 기록이 있었다. 다만 이 기록은 현존하지는 않고 마카베오기에 인용된 부분만 남았다. 여기서 그 산을 '모세가 올라가 하느님의 상속 재산을 본' 곳이라고 설명하는데, 오늘날 요르단에 있는 느보(Nebo)산을 가리키는 듯하다. >같은 문헌에 이러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신탁을 받고 나서 사람들에게 천막과 계약 궤를 들고 자기를 따라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올라가 하느님의 상속 재산을 본 그 산으로 갔습니다. 거기에 가서 예레미야는 동굴 집을 발견하고 천막과 계약 궤와 분향 제단을 그곳에 안치하고 나서 입구를 막아 버렸습니다. 그를 따라간 몇 사람이 길을 표시해 두려고 다가갔지만 그곳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 >예레미야가 그것을 알고 그들을 꾸짖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그 장소는 하느님께서 백성을 다시 한데 모으시어 자비를 보이실 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때에 가서야 주님께서는 저 물건들을 드러내실 것이다. 그리고 모세 위에 나타났듯이, 솔로몬이 그 장소가 특별히 성화되도록 청하였을 때에 나타났듯이, 주님의 영광과 구름도 나타날 것이다." > >(2마카 2, 4-8) 모험가들에게는 불멸의 [[떡밥]]으로 성궤를 찾으려고 갖은 노력을 하였다. 혹자들은 옛 [[솔로몬]] 사원 밑의 비밀 지하통로에 성궤가 숨겨졌다고 믿고 옛날에 성궤를 안치했던 그 바위, 즉 [[바위의 돔]] 아브라함의 바위 밑을 파헤치다가 [[무슬림]]들에게 들켜서 줄행랑을 친 일도 있었다고 한다.[* 바위의 돔 밑은 전혀 고고학적 조사가 없었던 탓에 지금까지도 떡밥이 흥하는 중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바위 밑을 단 한 번 과학조사를 해보았더니 내부에 공간이 있더라는 이야기가 있기도 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골고다]] 언덕 밑에 묻혀 있었다는 설도 있다. 바빌론에 의해 함락되기 직전 언약궤를 급히 예레미야 동굴에 묻고 봉안했고 이 예레미야 동굴이 골고다 언덕과 관련된 장소라는 것. 정확히 말하자면 십자가에서 떨어진 피가 지진이 나며 갈라진 땅 밑으로 들어갔는데, 이 피가 땅 밑에 묻혀있는 언약궤로 흘렀다는 설이다. 기독교인 입장에서 보면 이는 욤 키푸림에 염소 피가 뿌려져 유대인이 죄를 용서받은 것처럼 예수의 피가 성궤에 뿌려지면서 인류의 원죄를 용서받는 신비스럽고 감동적인 설이다.[* 최초의 인간이자 원죄를 지어 [[에덴]]에서 추방된 [[아담]]의 유해가 묻혀 있었다는 전승도 있는데, 정교회 십자고상들은 이 전승을 표현하여 십자가 발치에 해골을 그린다. 가톨릭에도 십자가 발치에 사람 두개골을 조각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에티오피아]]의 유대-기독교 전승에서는 그들이 성궤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에티오피아 왕가 전설에서는 [[솔로몬]]의 아들이자 에티오피아 초대 황제 메넬리크 1세가 성궤를 [[악숨]]으로 가져왔다고 전한다. [[그레이엄 핸콕]]은 이 전승을 믿고 성궤가 [[에티오피아]]로 옮겨졌고[* 나일강 하류의 엘레판틴이라는 섬에 유대인들이 거주한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가 유대교랑 그리스도교를 고대에 이미 받아들인 것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유명하고 [[베타 이스라엘|에티오피아계 유대인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핸콕은 이를 근거로 예루살렘에서 엘레판틴섬으로 성궤가 옮겨졌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살았던 것과 성궤의 존재 여부는 전혀 무관한 사항이다.] 현재는 에티오피아의 오래된 도시 악숨의 성당에 비장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악숨에 성궤가 있다고 굳게 믿고 매년 성궤를 기념하는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성궤를 안치했다는 성당 안에 들어가본 적이 없을뿐더러, 예루살렘 성전의 그 성궤가 맞다고 객관적으로 추정하거나 입증할 만한 어떤 자료나 조사결과도 없고, 단지 에티오피아인들이 그렇게 믿을 따름이다. 더군다나 이 성궤를 지키기 위해 모조품을 만들어 여러 곳에 흩어놓았다는 소문도 있어 더욱 불확실하다. 런던 대학교의 아시아-아프리카학 교수 튜더 파핏(Tudor Parfitt)은 2006년에 출판한 <잃어버린 성궤(The Lost Ark of the Covenant)>에서 [[짐바브웨]] 렘바족의 성물 '노마 룽군두(Ngoma Lungundu)'가 성궤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렘바족은 [[예멘]]에서 건너온 유대인들의 후예로 추정되고, 이들의 DNA가 솔로몬 성전에서 봉사했던 유대인 성직자들의 후손과 같은 특질이 있다고 말한다. 노마 룽군두는 현재 짐바브웨 국립박물관에서 보존 중인데, [[탄소연대측정]] 결과 14세기에 제작되었다고 밝혀졌다. 파핏 교수는 예루살렘이 외적의 침공을 받았을 때 성궤를 담당한 유대인들이 성궤를 모시고 예멘을 거쳐 아프리카로 건너갔고, 그 이래 언약궤가 파손될 때마다 복제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노마 룽군두는 상자가 아닌 [[북(악기)|북]]인데, 커다란 그릇 형태에 가죽을 씌운 것이라 무얼 담는 용도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고, 지금은 파손되어 떨어졌지만 성궤처럼 봉을 끼울 수 있는 고리도 있다. 일본에서는 성궤가 일본으로 건너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쿠시마현]] 전설에 의하면, 먼 옛날 이상한 옷차림을 한 외래인이 도쿠시마 해안에 내렸는데, 이들이 궤짝 하나를 메고 츠루기산(剣山)으로 올라가 어느 동굴에 이를 숨겼고, 그 후 그들은 현지인에 동화되었다는 것이다. 일본 아마존 등을 뒤지면 <四国剣山に封印されたソロモンの秘宝>(2013) 등 책이 나온다. 물론 저자들은 관련 분야의 제도권 학자는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교]]의 [[신약성경]]에서는 [[요한 묵시록]]에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11장 19절에 "하늘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느님의 계약 궤가 나타나면서, 번개와 요란한 소리와 천둥과 지진이 일어나고 큰 우박이 떨어졌습니다."라는 구절을 마지막으로, [[보편 교회]]에서 [[성모 마리아]]로 해석하는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에 대한 예언이 12장에 바로 이어서 계속된다. 이에 가톨릭 신학에서 성궤는 [[성모 마리아]]의 은유로 본다. 상술하듯 구약시대에 성궤는 하느님의 영광이 지상에 강림함을 뜻하는데, 안에는 [[십계명]]판과 싹이 돋은 [[아론]]의 지팡이, [[만나]]가 들어있다(히브리서 9장 4절). 이는 신약 시대에는 그것들의 상위 호환에 해당하는 하느님의 말씀, 영원한 사제직, 생명의 빵인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므로, 예수를 수태한 성모 마리아가 바로 계약 궤에 해당하는 것. 흥미롭게도 언약궤를 골고다 언덕 아래에서 직접 발견했고 그 위로 갈라진 땅의 틈 사이로 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확인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다만 이스라엘로부터 언약궤 행방은 확인이 되진 않아 진실 여부는 저 너머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