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균관 (문단 편집) == 입학자격 == [[국립대]]였던 만큼 성균관 유생은 특혜도 많았다. 우선 오늘날로 치면 [[등록금]]이니 하는 거 모두 없이[* 대신 속수례(束脩禮)라 해서 제자가 스승한테 배움을 받고자 하니 가르침을 달라는 의미에서 약소하게나마 물건을 줬다고 한다. 보통은 [[술]], [[무명]]천, [[술안주]]를 줬다고.][* 단, 당시 무명천은 상당한 고가품으로 무명천 한 필이면 평민 기준에서 3~4개월 생활비에 맞먹는다. 결코 싸지 않으며 얕볼 물건도 아니다.] 성균관에서 수업받는 건 반촌에서 하숙생활 하지 않는 이상에야 모두 무료였고 성균관 유생만을 위한 과거 시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랬던만큼 성균관 유생이 되는 조건은 아주 까다로워서 일단 성균관 유생이 되려면 적어도 소과 합격을 하거나 향교나 4부학당에서 최우수 학생으로 추천 받아야만 입학이 가능했다. 즉 진사나 생원은 달거나 소과 합격이 유력하다고 추천을 받아야 노려볼 수 있는 자리였다는 것. 여기에 저 특혜를 얻으려면 연간 300일의 출석을 달성해야 했다.[* 현대 기준으로는 휴가 혹은 방학 없는 주 6일제에 가깝다. 상당히 빡빡한 수업일정인 셈. 출석은 매일 점심 급식(?)을 받은 기준으로 했는데 당연히 점심 급식만 받고 오후 수업을 째는 일이 빈번했고 나중에는 점심, 저녁 두 번으로 바뀌었다.--자체 휴강은 옛사람들이나 지금 사람들이나 똑같다.--] 여기에 툭하면 시험으로 매일 치는 시험 매달 치는 시험 등등 줄줄이 시험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